런던 한가운데 시티 오브 런던, 신성불가침의 금융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런던 안에는 또 다른 런던이 있다.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도시 안에 도시가 숨어 있다. 이름하여 시티 오브 런던 (City of London). 한국 식으로 옮기면 그냥 런던시 인데, 이 작은 구역은 그냥 작은 런던 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영국 왕도, 의회도, 민주주의도 제대로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천 년 된 금융왕국이다.
타워 브리지 서쪽 보행로에서 바라본 런던 시티의 고층 건물들과 런던 타워의 일부 모습. 보이는 건물로는 펜처치 스트리트 20번지, 틸리스 빌딩, 리든홀 스트리트 122번지, 스칼펠(공사 중), 세인트 메리 액스 30번지, 비숍게이트 100번지(공사 중) 등이 있다.(위키피디아)
광역 런던 대 시티 오브 런던, 넓이와 권력의 역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런던, 즉 빅벤이 있고 버킹엄 궁전이 있고 관광객들이 빨간 이층버스에 올라 타는 그 런던은 광역 런던(Greater London) 이다. 넓이가 약 1572㎢, 인구는 약 900만 명에 달한다. 서울과 비슷한 규모다.
그런데 그 광역 런던의 한복판, 템스강 북쪽에 면적 약 2.9㎢의 구역이 있다. 여의도보다 조금 큰 이 땅이 바로 시티 오브 런던이다. 상주 인구는 고작 9000 명 남짓. 그러나 낮에는 약 50만 명이 몰려드는 세계금융의 심장부다. 면적 대비 권력 밀도로 따지면, 아마 지구상 가장 무거운 땅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런던의 관계다. 광역 런던은 시장(Mayor)이 다스리고, 시티 오브 런던은 따로 로드 메이어(Lord Mayor) , 즉 시 시장 이 다스린다. 둘 다 런던 시장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다. 광역 런던 시장이 대중교통을 걱정하고 치안을 논할 때, 시티의 시장은 세계 은행가들과 조용히 저녁식사를 한다.
지도에 하얀색은 광역 런던이고 붉은 색은 시티 오브 런던(위키피디아)
천 년의 특권, 역사가 쌓은 성벽
시티 오브 런던의 역사는 서기 43년 로마인들이 론디니움(Londinium) 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로마가 물러간 뒤에도 이 작은 구역은 살아남았고, 1066년 노르만 정복 당시 정복왕 윌리엄 1세(1028~1087)가 권력을 잡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윌리엄은 런던 전체를 무력으로 접수했지만, 시티 상인들에게는 특별히 협상을 제안했다. 너희 기존관습과 특권을 인정해 줄 테니, 나를 왕으로 받아들여라. 이것이 바로 윌리엄 헌장(William Charter) 의 핵심이다. 전쟁 대신 협상으로 얻어낸 자치권. 무려 천 년 전 이야기다.
이후 1215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발효될 때도 시티의 자치권은 명문화되었다. 왕권을 제한한 역사적 문서에 시티의 특권이 함께 보장된 것이다. 민주주의 탄생과 금융 권력의 보호가 동시에 일어난 셈인데, 이것이 어쩌면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바유 태피스트리의 한 장면으로, 정복왕 윌리엄 1세와 그의 이복형제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가운데가 윌리엄(위키피디아)
이상한 선거, 기업도 투표한다
시티 오브 런던의 가장 기이한 제도 중 하나는 선거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기업도 투표권을 갖는다. 상주 인구 9000 명의 투표권은 약 8000 표이지만, 시티 안에 사무실을 둔 기업들이 임명하는 대리투표인이 수만 표에 달한다. 골드만삭스 런던지사도, 대형 법률회사도 투표권을 행사한다.
민주주의 역사상 기업이 시민과 동등하게, 아니 더 강하게 투표권을 갖는 공식 제도가 21세기에도 버젓이 살아있는 곳이 바로 시티 오브 런던이다. 어떤 이는 이를 중세의 유산 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금융 과두제의 교과서 라 부른다. 어느 쪽이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기업 투표 제도는 시티 자체 지방의회에만 적용되며, 영국 국회의원(하원) 선거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시티 오브 런던의 은행가(위키피디아)
명소, 역사와 돈이 공존하는 풍경
런던 탑(Tower of London), 1078년 윌리엄 1세가 짓기 시작한 이 건물은 왕실 요새이자 감옥이었다. 앤 불린(1501~1536), 토머스 모어(1478~1535) 등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오늘날은 왕실 보물전시관으로 쓰인다. 권력이 죽음을 거쳐 관광 상품이 된 곳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 크리스토퍼 렌(1632~1723)이 1675년부터 1710년까지 35년에 걸쳐 완성한 걸작이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재건된 것으로, 넬슨 제독(1758~1805)과 웰링턴 공작(1769~1852)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전쟁 영웅들이 잠든 교회 바로 옆에서 세계 금융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묘하게 어울린다.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 1694년 설립된 이 기관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중앙은행 중 하나다. 늙은 아낙네(The Old Lady of Threadneedle Street) 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별명은 정겹지만, 그 내부에서 결정되는 금리 하나가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꾼다.
로이즈 오브 런던(Lloyd s of London),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1648~1713)의 커피숍에서 시작된 보험시장. 선박보험에서 출발해 지금은 세상의 거의 모든 위험을 돈으로 계량화하는 곳이 되었다. 커피 한 잔에서 글로벌 위험 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광역 런던으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 다우닝가 10번지가 있다. 민주주의와 왕실의 무대다. 시티가 돈의 무대라면, 광역 런던은 권력의 무대다. 그리고 이 두 무대가 끊임없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공존한다.
런던 탑과 그 주변.(위키피디아)
유명 인물들, 이 도시가 키운 사람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태어난 곳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이지만, 그의 작품이 꽃을 핀 곳은 런던의 글로브 극장이다. 그는 권력자를 풍자하고 인간의 탐욕을 무대 위에 올렸다. 오늘날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인들이 그의 희곡을 읽는다면, 아마 자신들이 등장인물임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찰스 디킨스(1812~1870), 런던의 빈민가를 걸으며 소설을 썼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두 도시 이야기』는 그 시대 불평등의 기록이다. 시티의 번영 뒤에 숨은 빈곤을 들추어낸 작가. 지금 다시 읽어도 전혀 낡지 않은 것이 더 슬프다.
아이작 뉴턴(1643~1727), 물리학자로 유명하지만, 1696년부터 1727년까지 왕립 조폐국 감사로 일하며 화폐 위조범을 잡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중력을 발견한 사람이 돈의 무게도 달았던 셈이다.
마거릿 대처(1925~2013),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낸 철의 여인 .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한 이른바 빅뱅(1986년 금융자유화) 의 주역이다. 그녀 덕분에 시티 오브 런던은 세계금융 중심지로 도약했고, 영국의 제조업은 급격히 쇠퇴했다. 한 사람의 결단이 한 나라의 산업지형을 바꾼 사례다.
셰익스피어 초상화(위키피디어)
한국에 주는 시사점, 우리에게도 시티 가 있는가
자, 이제 지구본을 돌려 한반도를 바라보자.
한국에도 사실상 시티 오브 런던과 닮은 구조가 있다. 그것은 특정지역이 아니라, 특정 재벌 그룹들이 만들어내는 비공식 성역이다. 법 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정권이 바뀌어도 건재하며, 선거로 통제되지 않는 경제권력. 시티 오브 런던이 천 년의 문서로 특권을 보장받았다면, 한국의 재벌은 수십 년의 관행과 정경유착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차이가 있다면, 시티는 규칙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고, 한국의 일부 경제 권력은 규칙을 무시하거나 왜곡해 자신을 보호해왔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더 영리한가를 묻는 것 자체가 씁쓸하지만, 적어도 시티는 법 안의 특권 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투명성의 외양은 갖추었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지방자치의 역설이다. 시티 오브 런던의 자치권은 민주주의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융 과두제를 보호하는 방패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지방분권을 논할 때, 그것이 진정한 주민자치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지역 토호세력의 성역화로 이어지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찰스 디킨스가 19세기 런던 빈민가를 소설로 기록했듯, 오늘의 한국에도 그런 기록자가 필요하다. 고금리, 전세사기, 청년실업, 지방소멸. 이것들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 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 만들어낸 구조다. 런던 탑에서 처형된 이들처럼, 그 이름들이 기록되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위키피디아)
두 개의 런던이 주는 하나의 교훈
광역 런던과 시티 오브 런던. 하나는 민주주의의 무대, 하나는 금융의 신성불가침 구역. 이 두 도시가 수백 년 동안 긴장 속에 공존해온 것은, 어쩌면 인류가 아직 민주주의와 자본 이라는 방정식을 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우리는 런던을 부러워하기 전에, 런던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방정식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여의도 한 구석, 어떤 건물의 회의실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조용히 선거 없이 결정을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템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웨스트민스터. 오른쪽에 빅벤이 보인다.(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