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배터리법… LCA, 안 하면 수주도 규제도 막힌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ESG 실무자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단연 ‘데이터’다. 사업장 단위 집계도 까다로운 탄소배출량을 이제는 제품 단위로 제출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의무 보고가 본격화되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제품당 배출량 집계를 위한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숙련된 재무팀에게도 제품당 원가 산출은 까다로운 일이다. 데이터가 모두 확정돼 있는 원가도 이럴진대, 배출량은 공급망 전반에 흩어져 있을 뿐 아니라 평가 기준도 여러 갈래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LCA,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ESG 전문 컨설팅기업 그리너리의 이원호 본부장, LCA 전문가 이경용 책임연구원을 만나 답을 들었다.
복잡한 LCA 프로세스, 실무진이 알아야 할 핵심은?
Q. 최근 전과정평가(LCA)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리고 있다. 정확히 무엇인가.
LCA는 한 제품이 원자재 채굴부터 제조,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환경 영향을 수치화하는 평가 방법론을 말한다. 예를 들어 냉장고라고 치면, 철강 등 원자재 채굴과 제련, 부품 생산이나 조립 과정을 위한 설비 운영, 소비자 사용시 발생한 전력, 이후 폐기까지 제품 사용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집계해 냉장고 한 대 단위로 쪼개는 것이다. 복잡한 과정일수밖에 없다.
문제는 LCA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는 점이다. EU는 에코디자인규정(ESPR),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을 통해 제품별 LCA 결과 제출을 시장 진입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배터리법(Battery Regulation)에서는 셀 단위 탄소발자국(PCF)을 제출하지 않으면 유럽 내 유통이 불가능하다.
내년 1월 본격 시행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더 직접적이다. 제품당 배출량이 보고서로 제출돼야 하고, 그 값에 따라 탄소인증서 구매 비용이 결정된다. 산정 결과가 곧 추가 비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Q. 대부분 통상 규제다. EU 수출기업이 아니면 당장은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국내외 원청기업(OEM)들은 제각각 넷제로 목표를 세우고 자사에 최적화된 시나리오로 탄소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속도 조절은 있을 수 있겠지만 방향성은 변하지 않는다.
목표를 세웠다면 관리해야 한다. OEM들이 협력사에게 탄소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때 갖춰야 하는 것이 제품 단위당 배출량 산정 역량이다.
이제 국내 실무자들도 지속가능성 보고서(SR) 공시를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GHG) 산정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SR에서 요구하는 사업장 단위 배출량 산정 방식은 사업장이나 기업 전체의 전기·가스 사용량을 합산하는 수준이라, 배출량 감축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배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제품이나 공정, 원부자재를 파악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제품 단위 배출량은 원자재·부품·공정별로 탄소배출량을 쪼개서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소재를 바꾸면 배출량을 몇 % 줄일 수 있다’는 식의 인사이트를 바로 얻어낼 수 있다. 글로벌 OEM이나 규제기관이 LCA를 통한 제품별 배출량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기업에 실질적인 리스크가 되고 있다. 실제 KOTRA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부품을 제조하는 D사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해달라는 스웨덴 볼보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막바지 단계였던 납품 계약도 최종 무산됐다.
다른 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7월, 삼성디스플레이는 한화큐셀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재생에너지 조달에 나섰다. 글로벌 고객사의 탄소중립 요구에 대한 선제 대응 차원이다.
Q. 구체적으로 LCA 수행 프로세스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첫째, 목적과 범위 정의다. 제품 성격에 따라 생산부터 출하 단계(Cradle-to-Gate)까지만 볼 수도 있고, 사용과 폐기까지(Cradle-to-Grave) 포함할 수도 있다. 자동차처럼 사용·폐기 단계 추적이 어려운 경우는 출하 단계까지만 포함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냉장고는 폐기 시 냉매·단열재 처리 과정에서 환경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 과정이 LCA 평가 범주에 들어간다.
둘째, 전과정 목록(Life Cycle Inventory analysis, LCI) 분석이다. 원자재, 전력·가스 사용량, 배출물까지 모두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작업이다. 출발점은 BOM(Bill of Materials), 즉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 목록이다. 문제는 하나의 공정이나 설비에서 여러 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경우다. 예컨대 해당 설비에서 발생한 에너지 배출량이 100이라면 이를 제품별로 나눠야 한다. 이 과정을 ‘할당(allocation)’이라고 한다. 무게가 무거운 제품에 더 많은 배출량을 할당해야 할지, 아니면 생산량 기준으로 할지, 매출과 직결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할지, 어떤 기준으로 할당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크게 달라진다.
셋째, 전과정 영향평가(Life Cycle impact, LCIA)다. 앞서 수집·정리한 데이터를 배출계수와 결합해 환경 영향으로 환산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제품 생산에 전기 1kWh, 철강 1톤이 투입됐다면, 각 항목에 해당하는 배출계수를 곱해 실제 배출량(kgCO₂e)을 계산하고, 이를 통해 제품당 탄소발자국(PCF)을 산출한다. 국내의 경우 환경부 산하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서 제공하는 배출계수를 활용할 수 있다. 어떤 배출계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므로, 사업장의 위치와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계수를 선택해야 한다.
넷째, 해석과 보고다. 단순 수치 제시가 아니라, 어떤 평가 방법론과 계수를 적용했는지 근거를 밝히는 단계다. 규제기관이나 OEM은 숫자 자체보다 그 과정을 더 중시한다. ISO 14040·14044 같은 국제 표준도 이 네 단계를 기본 구조로 제시하고 있다.
전과정평가 수행 프로세스 = 그리너리 제공
Q. 실무자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단연 데이터 수집이다. LCA에는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 목록(BOM), 공장에서 쓰는 전기·가스 사용량, 원자재 투입량, 폐수·폐기물 처리 내역까지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는 부서마다 따로 관리되고 있어, 한 번 모으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 협력사 자료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엔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더욱 어렵다.
둘째는 포맷 난립이다. 현대차, GM, EU 배터리법 등 고객사와 제도별 요구 양식이 제각각이다. 결국 같은 데이터를 여러 포맷으로 다시 입력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업무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셋째는 신뢰성 문제다. 어떤 배출계수를 쓰느냐, 그리고 시스템 경계(산정 경계)를 어디까지 두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원료 채굴부터 생산과 출하까지’만 볼지, ‘사용과 폐기까지’를 포함할지에 따라 숫자는 완전히 달라진다.
Q. 규제기관이나 원청에는 결과값만 넘기면 되나.
그렇지 않다. LCA의 근본적 목표는 추적이다. 단순히 ‘탄소배출량 1톤’ 같은 숫자만 제출하는 게 아니라, 그 수치가 어떤 계산 과정을 거쳐 도출됐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규제기관이나 OEM 또한 숫자 자체보다 할당 기준의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설정했는지를 소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CBAM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가정해보자. 철강 1톤을 생산할 때 2.1톤의 배출량이 나왔다고 보고했을 경우, 규제기관은 어떤 전력 믹스를 적용했는가”, 원료 철광석과 스크랩 비중은 어떻게 산정했는가” 같은 세부 근거를 확인한다. 이 과정이 빠지면 단순 수치는 ‘검증 불가 데이터’로 취급돼 인정받기 어렵다.
기업 고객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할 때 ‘한 개당 탄소발자국 15kg’이라고만 보고하면 부족하다. 원자재 조달 단계, 공정별 에너지 사용량, 배출계수 적용 방식까지 근거가 함께 제시돼야 신뢰할 수 있다. 결국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가’가 규제기관과 고객사의 판단 근거가 된다.
Q.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규제 대응 외에 LCA 효용은 없나.
있다. LCA는 단순한 규제 보고서가 아니다. 원자재를 바꿨을 때 얼마나 감축되는지, 공정을 전환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의사결정 도구다. 투자 우선순위나 신공정 도입 판단에도 활용된다.
거래 협상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고객사에 특정 소재를 제안할 때, 이 소재를 쓰면 탄소배출이 얼마나 줄고 고객사의 탄소 목표 달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다. 단순한 원가 경쟁이 아니라 탄소 효율 경쟁으로 프레임이 바뀌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너리 고객사 중에는 LCA 결과를 통해 매출을 늘린 사례가 다수 있다. 원청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탄소 감축이 가능할 뿐 아니라 향후 규제 리스크에서도 자유로운 협력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강화될 때 기준 미달 거래선을 걸러내고 교체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다.
Q. 업계 현장에서 최근 LCA에 대한 인식 변화를 체감할 수 있나.
그렇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게 뭐냐, 왜 해야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필요성 자체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어떤 툴을 선택할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솔루션을 도입할지, 자체 구축형으로 갈지로 논의가 옮겨갔다.
중견·대기업처럼 ERP를 갖춘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규제 대응이나 탄소 감축 목표 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LCA는 BOM 단위까지 데이터를 쪼개고 협력사 자료까지 끌어와야 하는데, 이를 실무자가 엑셀로 수작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부에서 계속)
☞ 이원호 기후테크솔루션본부 본부장
Erasmus University(네덜란드)에서 경영학 학사·석사를 마치고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앤장 ESG 경영연구소 실장과 MPG(MAX Performance Group)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IITP(정보통신기획평가원) 기획위원과 임업진흥원 과제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국내 기업의 ESG 공시 자료 검토, ESG 체계 구축 및 진단, 통합 ESG 데이터 관리 시스템 설계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온실가스 산정과 감축 방법론 개발, 전과정평가(LCA)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ESG 데이터·기후테크 전문가다.
☞ 이경용 기후테크솔루션본부 책임연구원
POSTECH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온실가스 검증심사원(보), 환경성적표지 인증심사원, 빅데이터분석기사 등 다수의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A-LCA 데이터베이스 본과 위원 및 IETA Carbon Market 디지털 워킹그룹(WG) 멤버로 활동 중이며, 제품 전과정평가(LCA) 및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분야의 전문가다. Scope 1, 2, 3 산정 체계화와 GHG 감축 전략 수립 등 실무 역량을 보유했으며, ESG 규제 대응과 고객사의 공급망 요구사항 분석, 지속가능경영 보고 체계 수립 등 다수의 민간 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