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게이트 가문의 피로 쓴 역사, 공원으로 살아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레스터주 옛 사슴 사냥터가 던지는 물음
영국 잉글랜드 중부, 레스터주 차른우드 숲 한켠에 브래드게이트 공원이 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1.2배인 850에이커(약 344헥타르)의 넓은 땅이다. 이 광활한 공원은 그냥 예쁜 잔디밭이 아니다. 이곳은 중세 사슴 사냥터였고, 야심 찬 귀족 가문의 본거지였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권력에 짓밟혀 죽어간 비극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언덕 위엔, 맥주잔을 닮은 탑이 하나 서 있다. 오늘날엔, 누구에게나 열린 시민의 공원이다.
브래드게이트 공원, 올드 존 탑, 바위와 제일 왼쪽위의 전쟁기념비.(위키피디아)
사슴들과 함께 시작된 800년, 거슬러 올라가면
공원의 역사는 12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땅은 영주가 사슴을 몰아넣고 활시위를 당기던 사냥터였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직후엔 윌리엄 1세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위그 드 그랑메닐(?~1094)이 하사받았고, 이후 여러 가문을 거쳐 1445년 그레이 가문의 손에 들어왔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공원을 유유히 거니는 다마사슴(전체 약 550마리의 4분의 3)의 조상은 노르만인들이 유럽에서 직접 들여온 것으로, 무려 800년 넘게 이 땅에서 대를 이어온 셈이다. 귀족들은 전쟁과 음모로 서로를 잡아먹고 사라졌지만, 사슴들은 그냥 풀을 뜯으며 살고 있다.
브래드게이트 공원에 있는 다마사슴(위키피디아)
야망이 딸을 죽인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비극
공원 한가운데, 지붕도 창문도 없이 붉은 벽돌 뼈대만 남은 저택 잔해가 있다. 브래드게이트 저택으로, 토머스 그레이 2대 도싯 후작(1477~1530)이 1520년경 완공했다. 그 아들 헨리 그레이(1517~1554)는 이 저택에서 딸 제인 그레이(1537~1554)를 낳았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 역사는 그녀를 아홉 날의 여왕 이라 부른다. 실제론 열사흘이었지만, 어차피 제대로 된 즉위도 아니었다. 어린 왕 에드워드 6세(1537~1553)가 폐결핵으로 죽어가자, 왕국의 실권자 존 더들리 노섬벌랜드 공작(1504~1553)은 자기 아들 길퍼드 더들리(1535~1554)를 제인과 혼인시키고 제인을 여왕으로 앉혔다. 헨리 그레이는 이 계획에 기꺼이 가담했다.
딸의 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중에 없었다. 제인의 어머니 프랜시스 브랜든(1517~1559)은 딸이 결혼을 거부하자 때렸다는 기록마저 있다. 가정폭력이 대단했다.
1553년 7월 10일 여왕으로 선포됐다가 7월 19일 민심이 돌아서자 지지자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메리 1세(1516~1558)가 왕위를 이었고, 제인은 탑에 갇혔다. 처음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헨리 그레이가 1554년 1월, 이번엔 메리 1세의 혼인에 반대하는 반란에 또 가담했다. 딸의 목숨이 저당 잡힌 판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
결국 1554년 2월 12일, 제인은 참수됐다. 남편 길퍼드 더들리도 같은 날. 아버지 헨리 그레이는 열하루 뒤인 2월 23일 처형됐다. 계획을 짠 노섬벌랜드 공작은 이미 1553년 8월에 먼저 죽었다. 야망의 게임에 참여한 자들 중 목숨을 부지한 자가 없었다.
전설에 따르면 공원의 참나무들이 제인의 죽음을 애도해 꼭대기 가지를 잘랐다고 한다. 실제론 수목 관리였다는 게 정설이지만, 어쨌든 나무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나무의 지혜란 무엇일까? 아마도, 야망을 품지 않는 것이리라.
제인 그레이의 초상화(위키피디아)
맥주잔을 닮은 탑의 진짜 사연, 올드 존 탑
공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해발 212미터) 위에, 맥주 머그잔을 빼닮은 탑이 하나 서 있다. 바로 올드 존 탑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손잡이처럼 솟은 아치가 달린 이 탑은, 레스터주의 상징으로 등록 문화재에 올라 있다.
이 탑에 얽힌 전설이 있다. 1786년, 5대 스탬퍼드 백작 조지 그레이의 아들이 스물한 살 생일을 맞아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공원 꼭대기에 거대한 모닥불을 피웠는데,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언덕 위에 있던 풍차를 태워버렸다. 풍차가 무너지면서 술을 즐기던 인부 존이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가슴이 무너진 백작은 존을 기리는 탑을 세우면서, 그가 술을 좋아했다는 걸 기억해 탑 한쪽에 손잡이 모양의 아치를 달아 맥주잔처럼 만들었다.
이야기는 근사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탑은 1784년에 이미 세워졌고, 올드 존 이라는 언덕 이름은 1745년 지도에 이미 나온다. 존의 생일잔치는 1786년이었으니, 탑이 사고보다 2년 앞서 존재했다는 뜻이다. 설화는 탑의 맥주잔 모양에 착안해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탑은 그레이 가문이 당시 유행하던 폐허 정원건물(장식용 건축물, 폴리·folly) 로 주문제작한 것이다. 19세기에 7대 백작이 경마연습장의 관람대로 개조했고, 아치 형태는 당시 구조변경 과정에서 생겼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요약하자면, 이 탑은 처음엔 귀족의 낭만적 취미로 만든 가짜 유적이었고, 나중엔 경마 전망대가 되었으며, 지금은 술꾼 인부를 기리는 명물로 소문 났다. 어느 시대에나, 진실보다 근사한 이야기가 더 오래 남는다.
탑은 현재 내부가 통상 닫혀 있고, 연간 몇 차례 공원 측 안내행사 때만 개방된다. 2001년에는 탑의 외형이 재단의 등록상표가 됐고, 2018년엔 탑 그림을 팔던 지역화가에게 사용료를 요구해 논란이 됐다. 공공재단이 랜드마크를 독점 상표로 등록하는 행태는, 한국에서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올드 존 탑(위키피디아)
저택은 무너지고, 공원은 살아남다, 찰스 베니언의 선물
브래드게이트 저택은 1739년 완전히 버려졌다. 사람이 떠난 건물은 뼈대만 남았고, 그레이 가문 후손들이 1905년 영지를 친척에게 넘기면서 1928년 통째 매물로 나왔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찰스 베니언(1857~1929)이다. 슈롭셔 농가 출신으로 세계를 돌며 기술을 익혀 레스터에서 제화기계 사업으로 큰 돈을 번 그는 1928년 브래드게이트 공원을 사들여 레스터주 주민들에게 영구 증여했다.
자연 그대로, 레스터주 사람들이 조용히 누릴 수 있도록.
올드 존 탑 옆 명판에는 그를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의 진짜 기념비는 풍경 자체라는 내용이다. 그는 공원을 기증하고 이듬해 3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선물을 건네고 1년도 채 되지 않아서였는데 그가 받은 대가는 명판 하나뿐이다.
찰스 베니언(위키피디아)
현재 뼈대만 남은 브래드게이트 저택(위키피디아)
한국에 대입하면, 웃기지만 슬픈 세 가지 물음
브래드게이트의 역사를 보며 한국의 오늘이 겹쳐 보이는 건 나만의 감상일까.
첫째, 권력의 야욕이 자녀를 볼모로 삼을 때 죽는 것은 언제나 아랫사람이다. 제인의 부모는 딸을 권력 게임의 말로 사용했고, 그 대가는 딸의 목숨이었다. 계획을 짠 노섬벌랜드 공작, 동조한 헨리 그레이, 묵인한 어머니, 모두 같은 해, 혹은 이듬해에 처형됐다. 권력을 얻기 위해 딸을 이용하다 줄줄이 잡혀 간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장면이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이나 반복됐는지 상기한다.
둘째, 올드 존 탑 이야기는 한국의 공식 역사 를 되돌아보게 한다. 술꾼 존이 사고로 죽어 생긴 탑이라는 전설은, 탑이 이미 존재한 뒤 모양새를 보고 만들어낸 이야기다. 근사한 서사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불편한 사실은 뒤로 밀린다. 비단 영국 귀족의 이야기만 아니다. 사실보다 편리한 서사가 먼저 퍼지고, 수정하려 하면 역사왜곡 이라는 역공이 돌아오는 구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셋째, 찰스 베니언의 이야기가 가장 묵직하다. 돈을 번 사람이 공공의 것을 사서 공공에 돌려줬다. 요즘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들리는가. 기부 문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과 연줄로 불린 재산이 다시 권력을 사는 데 쓰이는 구조가 반복되는 반면, 베니언처럼 조용히 내놓고 이듬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는 아주 드물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기억하는 나무들, 술꾼 인부를 기리는 맥주잔 탑, 기업인의 손에서 시민의 손으로 넘어온 공원. 브래드게이트는 오늘도 입장료 없이 열려 있다. 다마사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풀을 뜯는다.
어쩌면 사슴들이 800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 야망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올드 존 탑은 오늘도 맥주잔 모양으로 언덕 위에 서서 레스터주를 내려다보고 있다. 존이 정말 술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탑이 맥주잔을 닮았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진실이 무엇이든, 술 한 잔 하고 싶어진다.
올드 존 탑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뼈대만 남은 브레드게이트 저택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