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개입에 흔들린 탄소가격…EU ETS 개편 앞두고 변동성 확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ETS 개편 발언이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 출처 = 독일 연방정부
탄소가격이 시장 수급이 아닌 정치 발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14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영국 탄소배출권 가격이 연초 대비 20% 넘게 하락한 가운데, 정치권의 개입이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 발언 하루 만에 7% 폭락…수급보다 빠른 정치 변수
EU 탄소배출권(ETS) 가격은 4월 초 현재 톤당 70유로(약 12만1700원) 수준이다. 연초 87유로(약 15만1200원)에서 20% 하락했다.
낙폭의 계기는 올해 2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발언이었다. ETS 개편 가능성을 언급하자 가격은 하루 만에 7% 급락했다. 이후 그는 ETS를 성공한 제도”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시장은 이미 정치 개입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충격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REPowerEU 물량,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비용 부담에 따른 제도 완화 요구가 겹치면서, 가격은 수급보다 정책 신호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석탄 수요가 늘었지만, 탄소가격은 반등하지 않았다. 수급보다 정책 불확실성이 먼저 반영된 결과다.
EU·영국 격차 23유로…재연계 협상이 분수령
가격 하락은 영국 시장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탄소시장 전문기관 베이트 분석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영국 배출권 가격은 EU보다 톤당 23유로(약 4만원) 낮다. 영국 배출 기업에 부과되는 EU 탄소국경세 추가분 18유로(약 3만1300원)를 웃도는 수준이다.
영국 시장은 규모가 작아 자금 유입이 제한적이고, 가격이 하락한 이후 회복 속도도 EU보다 더디다. 이 구조적 차이로 가격 격차가 벌어졌다. 문제는 이 격차가 그대로 기업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EU 수출 시 영국 기업은 탄소가격 차액만큼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 부담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재정 손실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변수는 올여름 EU·영국 정상회의다. 양측 ETS가 재연계되면 가격은 다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협상이 결렬되면 격차는 구조적으로 고착될 수 있다.
베이트의 마커스 페르디난트는 FT에 올해 발생한 가격 격차는 연계 합의가 이뤄지면 일시적이지만, 무산되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진다”고 밝혔다.
무료배출권 축소·재연계 협상 앞두고…탄소가격, 투자 신호에서 정책 리스크로
EU 집행위원회는 7월 ETS 전면 검토에 착수한다. 핵심 쟁점은 산업계에 제공해온 무상 배출권의 축소 속도다. 독일과 이탈리아, 체코는 제도 완화를 요구하며 압박을 높이고 있다.
집행위도 일부 요구를 반영했다. 그동안 남는 배출권은 소각해 공급을 줄였지만, 이를 중단했다. 대신 배출권을 비축해 필요할 때 시장에 풀 수 있도록 했다. 공급을 조절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뀐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탄소가격을 정책 변수로 바꾸고 있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끌어올리던 구조에서, 필요하면 공급을 늘려 가격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탄소가격은 기업의 저탄소 투자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정책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투자 신호로서의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FT는 탄소가격이 탈탄소 투자를 유도하는 신호에서 정책 리스크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