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네타냐후, 이란 침략한 2인조 전쟁범죄단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플로리다주 팜 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도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25. 12. 29 [로이터=연합뉴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트럼프와 네타냐후, 두 극우적 전쟁범죄자의 결탁이 중동 화약고에 더 큰 불을 붙였다. 이른바 ‘예방적 공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번 이란 침공은 트럼프 2기 시작부터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였으며, 단지 ‘언제’ 실행되느냐의 문제였을 뿐이다. 이스라엘에게 이란 정권의 제거와 핵 개발 저지는 국가의 존망을 건 필생의 과제였다.
따라서 네타냐후가 ‘역사상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친구’라고 치켜세운 트럼프에게도 이 과제는 곧 자신의 과제이자, 중동 정책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었다. 이 침공의 최전방에서 선동과 실무를 도맡고 있는 것은 단연 네타냐후다. 더구나 트럼프는 최근 베네수엘라에서의 정권 교체 시도가 성공했다는 생각에 극도로 오만해졌다.
그는 항공모함 전단과 스텔스 전폭기들을 동원해 이란을 겹겹이 포위하면, 공포에 질린 테헤란의 지도부가 알아서 백기투항하며 무릎을 꿇을 것이라 기대했다. 트럼프가 요구한 것은 ‘외교’가 아니라 이란의 주권 전체를 포기하라는 ‘항복 강요’였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제국주의적 위협 앞에 굴복한다고 해서 공격이 멈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란은 ‘당장 맞아 죽을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말라 죽을 것인가’라는 가혹한 양자택일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반제국주의 사상가 질베르 아슈카르(Gilbert Achcar)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란 정권은 고통스러운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해 있었다. 워싱턴의 요구대로 항복하여 지역 내 억제력을 상실하고 하메네이 축출로 이어질 수 있는 내부 위기를 맞이하거나, 계속 버티다가 체제 전체를 위협할 군사적 타격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인의 트루스 소셜에 올린 사진과 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을 발표한 것을 백악관 공식 X 계정이 다시 올린 것이다. 2026. 2.28 AFP 연합뉴스
결국 이번 전쟁은 필연적인 수순이었고, 지난 수개월간의 지루한 협상은 단지 전쟁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지 작업과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의 포성을 울리기 전에, 트럼프 역시 고민했을 수 있다. 이란은 베네수엘라처럼 지도자 한 명만 제거한다고 끝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란의 군사적 능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은 베네수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자칫하면 미국을 또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이라크식 수렁’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불길한 화염은 결국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태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끝내 전쟁을 선택한 것은 이란의 핵 개발 때문이 아니다.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침공당한 것이 아니다. 그 정반대로,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공격당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단 한 번도 핵무기를 가지고 실전 배치한 국가를 직접 공격한 적이 없다. 북한의 사례가 보여주듯, 핵은 사실상 제국의 침공을 막는 ‘생존권의 방패’로 작동해 왔다. 트럼프의 이번 침공은 전 세계 권력자들에게 다시 한번 핵무기가 있으면 존중받고, 없으면 침공을 당한다 는 약육강식의 뼈아픈 교훈을 각인시켰다.
전 세계적인 핵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더 큰 불씨를 남겼다는 말이다. 트럼프가 이란 민중의 민주화 시위를 돕기 위해 폭격을 시작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트럼프는 개전 직후 이란 시민들에게 집을 떠나지 마라. 밖은 매우 위험하다 고 경고했다. 지금 그 시민들의 머리 위로 정밀 유도 폭탄을 쏟아붓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트럼프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 마을의 학교 붕괴 현장에서 1일 주민들이 희생자들의 시신과 생존자를 찾기 위해 수작업으로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 2026. 3. 1 미나브 마을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작전은 지난해 있었던 미국-이란의 ‘12일 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에는 도시에서 떨어진 외곽의 핵 시설이나 군사 기지가 주요 타깃이었으나, 이번에는 정권 지도부를 직접 제거하겠다는 명분으로 테헤란의 도심 심장부를 타격하고 있다.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은 곧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다. 벌써 학교가 파괴되고 어린 여학생들이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가자지구에서 목격했던 끔찍한 학살의 반복이다. 이 파괴와 비극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은 하메네이의 빈 자리를 꿰차고 다시 왕정의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하는 팔레비 왕자뿐이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200명이 넘었으며, 그중 절반이 아동이고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시선은 차갑고 선택적이기만 하다.
서방 언론과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민간인의 피눈물에는 눈을 감은 채, ‘37년 철권통치의 종말’이라는 헤드라인으로 하메네이의 사망에만 열광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을 은근히 찬양하며, 서방 각국 정부는 트럼프에게 아부하듯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 바쁘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던 국제사회의 도덕적 파산은 가자 학살의 비극을 반복할 태세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 무리한 전쟁을 감행했는가? 그 답은 이란이 아닌 트럼프에게서 찾아야 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다층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 트럼프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보편적 관세 전쟁은 미국 내 물가 폭등과 동맹국들의 강력한 반발만 불러오다 대법원의 위법 판결까지 받았다.
다시 터져 나온 ‘엡스타인 파일’의 폭로는 트럼프 자신과 측근들, 공화당 인맥을 뒤흔들고 있다. 게다가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과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의 확실한 참패 예고, 그리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터져 나오는 분열의 목소리를 잠재울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 전쟁은 트럼프에게 가장 달콤한 유혹이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공격을 받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폭발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연기를 사람들이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 지켜보고 있다. 2026.2.28. AP 연합뉴스
특히 조만간 예정된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란을 침공한 것은 명백한 메시지다. 베네수엘라를 본보기로 보여주었듯,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은 누구든 물리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공갈 협박’을 중국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키려는 계산이다.
하메네이의 죽음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자국민의 정당한 시위를 살인적으로 진압했으며, 외세의 폭격이 시작되자 민중에게 저항과 연대를 호소하기보다는 가장 먼저 인터넷을 차단해 소통을 막았다. 스스로의 정당성을 부정한 독재자의 마지막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미 오랜 시간 이란 체제 내부의 균열을 파고들어 협조자들을 매수하고 포섭해 왔던 게 분명하다.
이미 하메네이의 경쟁 세력인 ‘무자헤딘 에 할크(MEK)’가 ‘임시 정부’를 구성한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에게 이란의 미래가 팔레비식 왕정 독재의 복구인지 혁명수비대가 주도하는 더 강력한 군부 독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미국에 석유와 이익을 보장하고 이스라엘의 안보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를 ‘꼭두각시’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이 과정에 가장 뼈아픈 것은 이란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독재자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했다는 점이다. 그리스로 망명한 이란 민주화 활동가 시야바시 샤하비(Siyavash Shahabi)는 이렇게 말한다. 하메네이는 오랜 탄압, 학살에 대해 민중의 재판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우리는 항상 정의를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그의 정책으로 파멸한 이들의 이름 앞에 세워진 법정 피고인석에서 그를 보고 싶었다.
제국주의의 폭탄은 하메네이를 죽였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 이란 민중이 수십 년간 갈구해 온 ‘정의로운 심판’의 기회마저 함께 날려버렸다. 이는 민중의 승리가 아니라, 또 다른 식민주의적 통치 기획의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승리감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2003년 이라크를 기억한다. 당시에도 사담 후세인 정권은 단기간에 붕괴했고, 부시 대통령은 42일 만에 화려하게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정학적 대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라크는 내전과 테러의 생지옥으로 변했고, 미국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많은 미군의 목숨을 쏟아붓고도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야 했다.
지금 트럼프와 네타냐후도 스스로 이 전쟁의 목표나 ‘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지상군을 투입해 이란 전체를 점령할 것인가? 친미 괴뢰 정권을 세우는 게 가능할까? 미국의 여론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란 시민들이 과연 순응할 것인가? 어느 것 하나 불명확한 상황에, 그들은 유엔의 승인도, 의회의 동의도 없이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도박을 시작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에너지 가격 폭등과 세계 경제 위기, 그리고 전면적인 중동 전쟁의 확산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진정 필요한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제거’의 대상은 무고한 민중의 피를 제물 삼아 권력을 유지하려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다. 우리 모두가 살 길은 저 2인조 전쟁범죄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