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사살 뒤 암매장···범죄 증거 제시해도 처벌 없었다 [사회혁신] 15명의 시신이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된 뒤 슬퍼하는 유족들 ⒸReuters
중동에서는 휴전이 이름 그대로 ‘휴전’이 아니다. 최근 미국-이란 사이의 휴전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를 일이다. 중동의 ‘깡패국가(rogue state, 불량국가)’이자 전범국가인 이스라엘에게 ‘휴전’이란 그야말로 아무 의미가 없는 헛것이다. 중동분쟁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베나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겐 특히 그렇다.
전쟁이 그치면 네타냐후는 검찰과 법원으로 불려 다녀야 하는 신세다. 몇몇 기업인들과의 ‘더러운 거래’에 얽힌 뇌물수수, 사기 및 배임 등 3건의 부패혐의 때문이다. 2019년 정식기소됐고 2020년부터 재판이 시작되었으나, 코로나 19가 그의 숨통을 터주었다. 2023년 10월의 하마스 기습공격이 또 그를 살려주었다. 전쟁은 곧 자신의 목숨줄이다. 그렇기에 네타냐후는 ‘끝모를 전쟁’을 벌이려는 모습이다. ‘네타냐후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비무장 민간인들이다.
지난주에 살펴봤던 구급대원 15명의 집단 피살과 암매장(2025년 3월 23일)도 그런 정황 아래 벌어졌다. 두 달 전인 1월 17일에 체결됐던 임시 휴전 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은 거듭 가자지구를 공습했다(가자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월 17일 휴전 부터 3월 18일까지 두 달 사이에 414명을 살해했다. 그 가운데 174명은 어린이였다). ‘이름뿐인 휴전’이 종료된 3월 18일부터는 아예 대놓고 공습을 퍼부었다. 구급대원 암매장 사건도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일어난 참극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 엽기적인 전쟁범죄를 더 들여다보자.
구급대원이 숨지면서 남긴 휴대폰 기록
2025년 3월 23일 한밤중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인근의 알하샤신(Al-Hashashin) 지역에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그날 오전 3시 55분,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구급차가 공습 피해자들을 구하려 출발했다. 하지만 곧 본부와의 연락이 끊겼다[이미 이들 탑승자들은 가자지구 남부의 이집트 접경도시 라파(Rafah)의 텔 알술탄(Tel al-Sultan) 지역 언덕에 주둔중인 이스라엘군에게 학살된 상태였다]. 비상이 걸린 PRCS는 구급차 3대로 ‘구조 차량단’을 구성해 실종된 차량을 찾아나섰다.
구급차에 올라탄 레파트 라드완(PRCS 응급 구조 자원봉사자, 피살)은 텔 알술탄 학살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인 오전 4시 55분부터 휴대폰으로 현장 상황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2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사드 알-나사스라와 같은 차량에 탄 라드완은 구호차량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뒤 약 6분간 이어진 총격을 휴대폰에 생생하게 담았다.
라드완의 녹음은 호송대가 현장에 접근하는 차량들의 위치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총격 중 라드완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담아 오디오 분석의 기초가 되었다. 오전 5시 9분, 총격이 시작됐다. 라드완은 손으로 휴대폰을 가렸다. 총격 시작 7초가 지나자 PRCS 구급대원 아사드 알나사스라의 모습이 라드완의 손가락 사이에 보인다(라드완의 녹음 메타데이터는 나중에 포렌식 아키텍처와 이어샷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증명하는 주요 근거 자료가 됐다).
PRCS는 구조 차량 2대(구급차 1대, 팔레스타인 민방위대 소속 소방차 1대)를 추가로 내보냈다. 겉에 소속 표시가 뚜렷하게 보이는 이들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이동해 오전 5시 8분 처음 실종된 구급차가 서 있는 곳(가자지구 텔 알술탄)에 닿았다. 호송대의 구호 요원들은 차량에서 내려 실종된 구급차 쪽으로 걸어가려 했으나, 곧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을 받았다.
언덕에서 내려온 군인들은 생존자를 찾아 처형하듯이 근접 사격으로 확인 사살을 했다. 그 당시의 상황은 라드완이 숨지며 남긴 휴대폰에 생생하게 남았다. 이어샷은 라드완의 핸드폰 녹취록을 꼼꼼하게 해독한 끝에, 학살에 가담한 3명의 군인, 랄라스(Lalas), 요탐(Yotam), 아마치아(Amatzia)라는 이름을 밝혀냈다. 관련 녹취록을 들어보자.
[00:05 – 00:07: 랄라스, 다 끝났어?
00:07 – 00:10: 그럼 가서 교체해. 우리가 총을 쥐여줄 테니 가방은 네가 가져가.
00:36 – 00:38: 무슨 일이야, 요탐?
00:38 – 00:42: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엄호에서 내려오지 마. 먼저 저쪽으로 가서 엄호하고, 놈들 머리를 어딘가에 처박아 둬.
01:17 – 01:18: 폭발음, (이스라엘 라파엘사에서 개발한 4세대 보병 및 차량 탑재용 대전차 미사일인) 스파이크 LR 미사일로 추정됨.
03:36 – 03:38: 기계음]
(https://www.earshot.ngo/investigations/israeli-executions-of-palestinian-aid-workers)
결국 그날 6시 무렵,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8명, 팔레스타인 민방위 6명,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직원 1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구호 요원 15명이 숨지고 암매장됐다. 피해 차량은 적신월사 구급차 5대, 소방차(민방위대 트럭) 1대, UNRWA 차량 1대와 미니버스 1대, 모두 합쳐 8대였다. 적신월사나 유엔(UN) 소속 차량이라는 것이 뚜렷이 보이는 인도주의 차량을 타고 가던 구호요원들은 이스라엘군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데도 끔찍한 암매장으로 삶을 마감했다(총인원 17명 가운데 2명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대원. 문터 아베드(적신월사 자원봉사자, 왼쪽)와 아사드 알나사스라(구급차 운전기사) Ⓒ적신월사
발가벗겨져 속옷만 입은 채로 던져졌다”
문터 아베드(PRCS 자원봉사자, 당시 27세)는 맨먼저 실종된 구급차에서 살아남았고, 아사드 알나사스라(PRCS 구급대원)는 실종 차량을 찾아나선 구조대원들 가운데서 살아남았다. 아베드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구급차는 간선도로를 따라 텔 알술탄 방향으로 남쪽으로 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운전자 무스타파 카파자와 PRCS 구급대원 에즈 엘딘 샤아트가 총에 맞았고, 운전자를 잃은 차량은 왼쪽으로 꺾인 뒤 전신주 근처에 멈췄다.
앞좌석에 있던 그의 동료 두 명은 총에 맞았지만 아베드는 구급차 뒷좌석 바닥에 엎드려 살아남았다. 총격이 멈추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언덕에서 내려와 수색과 확인사살을 했고, 구급차 뒷칸에 웅크리고 있던 아베드를 붙잡았다. 근처의 구덩이에 가둬 놓았다가 언덕 위 높은 콘크리트 구조물 뒤로 끌고갔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날 하루는 아베드에게 가장 긴 하루가 됐다.
언덕에서 아베드는 멀리서 팔레스타인 구급차들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 그 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있었고, 차량의 외관 표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물론 이스라엘 군인들도 그 차량들이 인도주의 관련 차량임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군에 잡혀 있는 동안 아베드는 구급차와 소방차를 포함한 다른 구조 차량들이 이스라엘 군의 매복 공격을 받는 것을 두 눈으로 봤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 구급차량과 시신들을 파묻으려고 군용 불도저와 굴착기가 구덩이를 파는 것도 봤다. 전쟁범죄의 생생한 목격자였던 셈이다.
오로지 살아남으려는 일념으로, 아베드는 마음에도 없는 이른바 ‘부역’을 했다. 인간 방패로 이스라엘군 병사들보다 앞장서 나서도록 강요받기도 했다. 수상쩍어 보인다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누구인지를 묻고 사진을 찍는 일을 도왔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당일 저녁에 풀려났다. 이스라엘군은 그의 신분증, 구급대원 유니폼, 신발을 압수했지만 시계와 속옷을 돌려주었다. 지옥문을 벗어난 아베드는 무작정 길을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적신월사 앰뷸런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건 당시 27세였던 아베드는 18세부터 팔레스타인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왔다. 그가 영국 과 인터뷰에서 남긴 단편적인 증언들을 모아 흐름에 맞게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다.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속옷만 입은 채로 남겨졌고, 손은 등 뒤로 묶였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나를 맨땅에 내던졌고 심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구타, 모욕, 죽음의 위협을 겪었다. 한 군인이 내 목에 소총을 대고 질식시키는 등 심한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다른 군인은 내 왼쪽 어깨에 단검을 겨누었다. 나는 점령군(이스라엘)이 동료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폭로할 것이다. 만약 내가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었다면, 누가 세상에 그들이 우리 동료들에게 한 짓을 알릴 수 있었겠는가?”
생존자들을 근거리에서 조준 사살
또 다른 생존자 아사드 알나사스라(사건 당시 47세)는 구급차 운전기사였다. 2025년 3월 23일 가자지구의 일출은 오전 5시 42분이었다. 알-나사스라에 따르면, 유엔(UNRWA) 소속 차량으로 명확히 표시된 도요타 하이럭스가 일출 뒤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구조 호송대원들이 차량에서 내려 실종 구급차에 다가갈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차량은 오전 6시에 유엔과 연락이 끊겼다. 두 번째 유엔 차량(미니버스)이 오전 6시 5분에 현장에 도착했고 총격을 받았다.
구급차 운전석에 있던 알나사스라는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차량에서 뛰쳐 나와 차량 뒤편 땅바닥에 몸을 낮췄다. 그는 두 동료 무함마드 바흘룰과 살레 무아마르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구급차 옆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봤다. 바흘룰이 알나사스라 옆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이 서로 껴안는 순간 바흘룰은 총에 맞아 숨졌다. 알나사스라는 자신을 껴안았던 동료의 시신 아래 엎드려 총격을 피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상 당한 동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들 부상자들을 근거리에서 조준 사살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이런 이스라엘군의 행태를 가리켜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사무총장 필립 라자리니는 ‘즉결 처형’이라 못 박았다. 라자리니는 2025년 3월 30일 발굴된 15구의 시신 가운데 카말 샤투트(UNRWA 물류 및 긴급구호 담당 직원)는 둔기 타살로 숨진 것으로 믿고 있다. 샤투트의 법의학적 사망 사유는 총살이 아니라 무거운 물체(둔기)가 머리 뒤쪽을 여러 차례 세게 내려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라자리니는 이런 행위가 전쟁범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만행이 저질러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UNRWA는 이스라엘 정부에 카말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껏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다.
쏘지 마라.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학살 바람이 지나간 뒤 이스라엘 군인들은 구급대원 가운데 한 사람인 알나사스라가 살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들 중 한 명이 그의 머리에 소총을 겨누자, 알나사스라는 히브리어로 쏘지 마라. 나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 이라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은 머뭇거리더니, 총을 쏘진 않았다. 하지만 옷을 벗기고 눈가리개를 씌워 구덩이에 던졌다. 알나사스라는 자신이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여겼다. 눈가리개를 한 상태였지만, 그는 천 사이로 파손된 차량들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먼저 붙잡힌 다른 생존자인 아베드는 언덕 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알나사스라를 붙잡는 모습을 목격했다). 알나사스라가 남긴 증언을 들어보자.
유엔 구급차량이 사고현장에 닿을 무렵 나는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와 통화 중이었다. (이스라엘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붙잡힌 뒤 (언덕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을 때 발사기를 어깨에 멘 병사를 보았다. 그들은 움직이는 차량이 더 있는지 물었고, 나는 유엔 차량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그들은 차량을 공격했다.”
(https://www.earshot.ngo/investigations/israeli-executions-of-palestinian-aid-workers)
학살 당일 오후에 풀려난 아베드와는 달리, 알나사스라는 37일 동안 모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 스데 테이만(Sde Teiman,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위치) 감옥에 갇혀 엄한 심문과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몸이 묶인 채 매를 맞는 신체적 폭행은 기본이고 각종 고문(소음 고문, 심리적 고문, 독방 감금, 음식 박탈)과 굴욕적 대우를 받았다. 그가 테러 활동에 연루된 혐의가 있다는 억지 이유를 내세워서였다. 사흘 동안 이스라엘인들이 디스코 룸 이라고 부르는, 매우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방에 갇혀 소음 고문을 받기도 했다. 알나사스라는 동료들에게 그곳을 말 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곳 이라 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코피가 날 정도였다. 귀에서도 피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붙잡힌 뒤 2주 동안 알나사스라는 ‘실종 상태’였다. 먼저 풀려난 아베드가 알나사스라의 생존과 체포 소식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그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가고 비난이 거세지자, 알나사스라는 붙잡힌 지 37일만인 4월 29일에 풀려났다. 학살 당일 풀려났던 아베드가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그날의 증언에 적극적인 데 견주어, 알나사스라는 자신의 고난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걸 조심스러워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동료들은 그가 아주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한다. 동료 구급대원들이 학살당했는데 나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학살 끝무렵 응급 차량 사이에서 발사된 총소리를 시뮬레이션해보면, 겨우 1~4미터 거리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구급요원들을 총살했음을 알 수 있다. ⒸEarshot
영국 의회에서 발표된 진상 조사 결과
15명 구급대원 학살 암매장 사건은 국제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봐도 전쟁범죄였다. 포렌식 아키텍처와 이어샷의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은 공간 및 음성 분석을 통해 구호요원들이 이스라엘군의 일방적인 공격을 받고 숨진 것이라 못 박았다(지난주 글 참조). 전문가들의 분석은 2명의 생존자(자원봉사자 문터 아베드와 구급대원 아사드 알-나사스라)의 현장 증언을 통해 신빙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들 생존자들의 1차 증언은 사건 현장의 상세한 3D 디지털 모델 안에 재구성되었고, 사건 현장 곳곳의 구조물, 차량, 관련 인물(희생자, 이스라엘군인)들의 동선을 보다 정확히 짚어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뿐 아니라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군인들이 구호 활동가들에게 쐈던 수백 발의 총알의 범위, 지속 시간, 발사 지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2026년 2월 23일 포렌식 아키택처와 이어샷, 두 조사기관은 구급대원 15명 학살과 암매장에 관련된 보고서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에 이스라엘의 놀라운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바로 그 다음날 두 조사기관은 영국 팔레스타인 위원회(BPC)가 주최한 영국 의회 모임에서 보고서 내용을 간추려 발표했다. 의회 행사장에서는 사건 현장의 물리적 모형과 탐사 다큐가 상영되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이스라엘이 범죄의 흔적을 지우려 암매장을 서둘렀다는 대목이다. 그 자리에서 나왔던 발표 내용을 보자.
[공격 약 2시간 반 후, 이스라엘 군은 텔 알술탄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으며, 해당 지역을 위험 전투 지역 으로 지정하고 차량 이동은 금지 라고 밝혔다. 이 명령의 시기와 내용으로 보건대 그것은 이스라엘 군이 학살을 사후에 정당화하려는 시도였음을 시사한다. 공격 직후 일주일 동안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와 유엔 인도주의 사무소가 현장 접근 요청을 반복했으나 이스라엘 군은 이를 거부했다. 공격 직후 몇 시간 동안 진행된 토목 공사로 사건 현장은 희생자들의 시신과 차량이 묻힌 집단 무덤으로 변모했다.]
(https://forensic-architecture.org/investigation/the-massacre-of-aid-workers-in-tel-al-sultan)
워낙 내용이 충격적이고 엽기적이었기에 와 를 비롯한 주요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지구촌 사람들이 받은 충격도 매우 컸다. 영국 의회에서 이뤄졌던 이어샷과 포렌식 아키텍처의 합동 발표는 단순한 언론 보도를 넘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의 공식 증거문서로 제출되었다. 발표장소를 영국 의회로 잡은 것은 보고서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도록 압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진다(하지만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이스라엘에 대한 주요 무기수출국으로 남아 있다).
2025년 3월 31일 가자지구 칸 유니스의 나세르병원에서 열린 15명 희생자의 장례식 Ⓒ알자지라TV 캡쳐 화면
왜 심각한 전쟁범죄인가, 4가지 근거
이 사건이 단순한 오인 사격을 넘어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에게 ‘의도적이고 잔혹한 전쟁범죄’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국제법(제네바협약,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등)의 근간을 뒤흔드는 여러 뚜렷한 위반 사항들이 이 학살사건에 집약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위반 사항은 크게 4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전쟁 중이라도 존중돼야 마땅한 의료 및 구호 표식을 깡그리 무시했다. 제네바협약(1949년) 제1·4조는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적십자사)나 붉은 반달(적신월사), 또는 유엔(UN) 표식을 단 차량을 공격해서는 안 되는 무조건적 보호 대상 으로 꼽는다. 학살 사건이 벌어지던 날 구급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운행 중이었고, 차에 탄 대원들은 구호요원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겨냥해 총격을 가한 것은 국제법상 보호대상을 겨냥한 의도적인 공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흔히 전투지역의 민간인들이 입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가 아니라는 얘기다.
둘째, 전투 능력이 없거나 부상을 입은 생존자를 근거리 사격으로 처형하는 잔혹행위를 벌였다. 이 또한 포로를 학대하거나 항복한 사람을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고 규정한 국제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짓이다.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8조에 따르면, 인도주의 지원 또는 평화유지 임무에 종사하는 인원 및 차량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과, 전투 능력이 없는 자를 살해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전쟁범죄라고 못박고 있다.
15명 시신의 부검 결과와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병사들은 총상을 입고 쓰러져 신음하던 구급대원들의 머리와 가슴을 겨냥해 근거리에서 확인 사살을 했다. 일부 희생자들은 손발이 묶여 있었고 손가락이 부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부상자들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른 다음 근접 사격으로 처형했음을 말해준다.
셋째, 시신을 암매장해 전쟁범죄를 은폐하려 했다. 이스라엘군은 군용 불도저로 구급차를 깔아뭉개고 시신을 모래흙 밑에 묻었다. 국제법을 따질 것 없이 아무리 적군이라도 죽은 이의 시신은 정중히 처리돼야 한다. 유족에게 돌려줄 수 없다면 마땅한 예를 갖춰 묻어야 한다. 이스라엘군은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해가면서 그들의 전쟁범죄를 감추려 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조직적 은폐 의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넷째, 학살은 구급대원 15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다른 많은 부상자들의 치료 기회를 앗아가는 인도적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추가적인 민간인 사망을 뜻한다. 구급대원 학살은 또한 위험을 무릅쓴 추가적인 앰뷸런스 출동을 망설이게 만든다. 끝내는 지역사회의 인도적 구호 체계를 무너뜨린다.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의도적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의심이 따른다. 다시 말해서, 구급대원 학살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의료 체계를 마비시키려는 전술적 판단에서 나왔다고 보여진다.
이스라엘군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
이제 글을 매듭지어야겠다. 이스라엘군은 국제법의 여러 조항들을 무시하고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희생자 가운데 다수는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었고 손이나 다리가 묶인 이들도 있었다. 이런 시신 상태는 지근거리에서 처형하듯이 죽인 것임을 말해준다. 더구나 암매장으로 범행을 숨기려 했다. 구급차량을 공격한 데엔 의료체계 마비와 같은 사악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혹마저 따른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국제사회로부터 이스라엘군의 범법행위가 단순한 실수나 오폭이 아닌, 명백한 전쟁범죄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지금껏 이스라엘의 대처는 너무나 뻔뻔스러웠다. 작전상 오해와 실수가 따랐다”는 뻔한 변명을 늘어놓는 ‘셀프 조사’와 ‘꼬리 자르기’를 감행했다. 현장 지휘관이었던 골라니 부대(이스라엘 5개 보병 여단 중 하나로, 잔혹성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부대) 소령 1명을 해임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근접 사살 현장에 출동해 녹취록에 이름을 남긴 3명의 군인에 대한 징계 논의도 없었다. 유엔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명백한 전쟁범죄인데도 비윤리적 행동이 없었다는 이스라엘의 셀프 조사 결과는 모순투성이 라고 반발하면서 학살의 책임자들을 가려내 처벌하길 바라고 있다.
학살 당시 골라니 부대는 제14 기갑여단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꼬리 자르기에 희생된 소령의 고위급 상관은 골라니 부대와 제14기갑여단이 속한 사단의 예후다 바흐 준장. 이스라엘 예비역들 사이에선 바흐가 오래전부터 부하 장병들에게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며 민간인 살해를 부추겨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그날의 학살 현장에는 포로에 대한 고문 행위로 악명이 높은 이스라엘 504 군사정보부대 소속 현장 대원들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2023년 10월 전쟁이 벌어진 뒤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조사해온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이들의 이름을 범죄자 리스트에 올려놓고 기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분석을 통한 이어샷과 포렌식 아키텍처의 과학적 조사는 작전상 오해와 연쇄적 실수였다”는 이스라엘의 ‘셀프 조사’를 무너뜨렸다. 영국 팔레스타인 위원회(BPC)가 주최한 영국 의회 모임에서 이들 조사기관 요원들은 최첨단 GPS와 드론을 띄우는 이스라엘 군이 몰라서 실수했다는 것은 사법 방해이자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며, 이 디지털 지도의 사운드는 2시간 동안 조직적으로 사냥하듯 학살했음을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이스라엘은 문제의 이스라엘군 현장 지휘관(소령)을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제법학자들이 말하는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의 논리에 따르면, ICC에 가입하지 않은 이스라엘도 전범 처벌을 비껴갈 수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지나 범죄 처벌이 흐지부지되는 일도 없다. 전범엔 시효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먹이 법보다 앞서는 현실은 뒷골목에서 그치지 않고 21세기 국제질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런 무법천지에서 오늘 살펴본 이스라엘의 엽기적 전쟁범죄자들이 처벌받을 날은 언제쯤일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