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갖지 못해 반얀 트리 심고 돌본 팀막카 할머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기를 가질 수 없어 나무를 심기로 결심한 인도 여인이 있었다. 인도 카르나타카 주 출신의 환경운동가 살루마라다 팀막카(Saalumarada Thimmakka). 1911년 6월 30일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28년생이란 일부 기록도 있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다.
알라 마라다 팀막카 가 본명인 그녀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주 라마나가라 지구 훌리칼과 쿠두르 사이 5km 구간에 385그루의 반얀 트리(벵갈고무나무)를 심고 돌본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평생 심거나 심는 데 힘을 보탠 나무는 8000그루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채석장에서 임시직 일꾼으로 살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나무를 심었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와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팀막카 환경교육 리소스 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발족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중앙 카르나타카 대학은 2020년 그녀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인도 국민상을 수상했고, 2019년 인도 정부로부터 파드마 슈리 훈장을 수여받는 등 수십 가지 상을 받았다.
나무 심는 할머니 팀막카가 지난해 11월 14일 벵갈루루에서 11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고인은 최근 호흡 문제와 노환으로 여러 차례 입원했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카르나타카 주 투마쿠루 지구에 위치한 마이소르 왕국의 굽비 탈룩에서 태어났다. 같은 주 라마나가라 지구 마가디 탈룩의 훌리칼 마을 출신 비칼리 치카이아와 결혼했다.
자녀를 가질 수 없었던 부부는 아이들 대신 반얀트리를 심기 시작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살루 마라다 였다. 살루 는 칸나다 어로 나무줄이란 뜻이었다. 부부에게는 우메시라는 양아들만 있었다.
훌리칼 마을 근처에는 반얀 트리가 넘쳐났다. 부부는 이 나무들의 묘목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첫 해에 10그루의 묘목을 마을에서 5km 떨어진 곳에 심었다. 2년째에는 15그루의 묘목, 3년째에는 20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부부는 묘목에 물을 주려고 4개의 물통을 들고 몇 km를 걷곤 했다. 가시 덤불을 둘러 방목하는 소들로부터 보호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모두 385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자산 가치는 약 150만 루피로 평가됐는데 그걸 따질 일은 아니다. 이 나무들은 현재 주 정부가 인수해 관리하고 있다.
부부가 심고 돌본 385그루의 반얀트리는 2019년 바게팔리-할라구루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베어질 위기에 몰렸다. 팀막카는 주 지사와 부지사에게 매달려 공사를 재고해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주 정부는 70년된 나무들을 구할 대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본인이 주장한 나이가 맞다면 107세 노인이 이런 정력적인 활동을 한 것이니 위키피디아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팀막카의 남편은 1991년에 이미 세상을 등졌다. 그녀는 그 뒤 인도의 여러 조림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나무 심는 데 힘을 보탰다. 또 마을에서 열리는 연례 축제를 위해 빗물 저장 탱크를 만드는 등 다른 공동체 활동에도 참여했다. 남편을 기리기 위해 마을에 병원을 짓는 꿈을 품었으며, 이를 위해 신탁이 설립됐다.
1999년에는 그녀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Thimmakka Mathu 284 Makkalu 가 제작돼 이듬해 인도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2016년 살루마라다 팀마카는 영국 BBC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말년에 오점도 남겼다. 델리에 정착한 코미디언 리투 바수 프릴라니가 적어도 14년 동안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고 비영리 단체에 자신의 이름을 잘못 사용했다고 고소한 일이었다. 그녀의 양아들 우메시는 이 단체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프릴라니는 소송을 제기하기 한참 전에 이미 법인은 설립돼 있었으며, 2003년 팀막카를 찾았을 때 사리를 선물 받은 사진을 제시하며 그녀가 비영리 단체를 승인했다고 재판부에 반박했다. 2014년 카르나타카 고등법원은 프릴라니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