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당파 군대 본영·노벨상 부자 길러낸 마켓 하버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레스터셔 주 남쪽 끝자락, 웰런드 강이 조용히 흐르는 곳에 마켓 하버러(Market Harborough)라는 마을이 있다. 인구 약 2만 5000명, 한국으로 치면 웬만한 읍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느 대도시 못지않은 굴곡과 드라마가 펼쳐진다. 왕이 이곳에서 마지막 군사회의를 열었고, 노벨상 수상자가 여기서 자랐으며, 코르셋 공장이 지방의회 청사, 박물관, 도서관이 됐다. 이쯤 되면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마켓 하버러 옛 문법학교(위키피디아)
귀리언덕에서 장터까지, 마을의 탄생
마켓 하버러는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마을이다. 그들은 이 땅을 하에페라 베오르그(hæfera beorg) , 즉 귀리언덕 이라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했다. 1086년 둠스데이 북(Domesday Book) 에 기록될 무렵만 해도 그저 작은 촌락에 불과했다. 이름부터가 소박하다. 귀리라니. 밀도 아니고 보리도 아니고. 당시 사람들의 겸손함이 느껴진다.
1204년 잉글랜드 왕 존(John)이 이곳에 왕립 장터허가증을 내주면서 마을은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장터는 그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1221년에는 헨리 3세가 장날을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바꿨는데, 인근 마을 로스웰(Rothwell)의 월요 장터와 겹쳤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치면 대형 마트가 골목상권을 침해하자 왕이 직접 날짜 조정에 나선 셈이다. 중세판 상생협력 대책이랄까.
1614년에는 로버트 스마이스(Robert Smyth)의 문법학교가 세워졌는데, 이 건물은 나무 기둥 위에 교실을 올린 독특한 구조로 지금까지도 마을 중심가에 남아 있다.
성 디오니시우스 교회는 마켓 하버러에 있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 교회다. 이 건물은 14세기에 세워졌는데 그 뒤 증축되었다. (위키피디아)
왕의 마지막 밤, 그리고 역사의 분기점
1645년 영국 내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마켓 하버러는 찰스 1세(1600~1649) 왕당파 군대의 본영이 됐다. 1645년 6월 13일 밤, 찰스 1세는 이 마을의 여관에서 왕자 루퍼트를 비롯한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촛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지휘관들은 어떻게 의회군에 맞설 것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튿날 새벽, 왕당파 군대는 마켓 하버러에서 남쪽으로 출발해 네이스비(Naseby) 벌판에서 의회군과 맞붙었다. 왕당파는 1000명 이상이 전사하고 4500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 전투로 찰스 1세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됐다. 그는 4년 뒤인 1649년 처형당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패배가 단순한 군사적 참패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투 중 왕의 개인 서류함이 노획됐고, 그 안에서 가톨릭 세력에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들이 발견되면서 왕의 이중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권력자의 비밀문서가 민심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은 언제나 서류 한 장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켓 하버러 광장에선 요즘은 화, 금,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800년째다. (위키피디아)
기둥 위의 학교, 로버트 스마이스의 선물
마켓 하버러 출신의 로버트 스마이스는 1570년 무렵 맨몸으로 런던까지 걸어가, 1598년에는 런던시 재무관리관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1607년 고향에 문법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 건물은 매우 특이한 구조다. 나무 기둥 위에 교실이 올라가 있어, 아래층 빈 공간에서는 버터 시장이 열렸다. 교육과 상업이 한 건물 안에서 공존한 것이다. 위층에서 아이들이 라틴어를 배우는 동안 아래층에서는 버터 흥정이 이루어졌으니 어찌 보면 실용주의의 극치다.
이 학교는 오늘날 로버트 스마이스 아카데미 라는 이름의 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400년 넘게 같은 이름, 같은 정신을 지키는 학교라니, 한국의 수많은 학교들이 개명과 통폐합을 반복하는 것과 대조된다. 이름 하나를 이렇게 오래 붙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현재 마켓 하버러의 로버트 스마이스 아카데미(김성수 시민기자)
노벨상은 귀티 없는 마을에서 나온다, 윌리엄 헨리 브래그
윌리엄 헨리 브래그(William Henry Bragg)는 1862년 잉글랜드 컴벌랜드 위그턴(Wigton) 근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마켓 하버러의 외삼촌 집에서 자라나 그곳의 문법학교를 다녔다.
그는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진학해 수학을 공부하고,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교 교수가 됐다. 그리고 1915년, 그는 아들 로렌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890~1971)와 함께 X선을 이용한 결정구조 분석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부자가 한 상을 함께 받은 것은 노벨상 역사에 유일한 사례다. 로렌스는 당시 스물다섯으로 물리학 또는 과학 분야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귀리언덕 마을의 평범한 약국집 조카가 세계과학사에 이름을 새겼다. 재능이란 어디에서 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모든 인재를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사회구조를 돌아볼 때, 이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915년 윌리엄 헨리 브래그(위키피디아)
1915년 로렌스 브래그(위키피디아)
코르셋 공장이 도서관이 되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건물들
마켓 하버러의 사이밍턴(Symington) 가문은 19세기 후반부터 여성용 코르셋을 생산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회사는 이른바 자유속옷 (Liberty Bodice)의 발명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 사이밍턴 코르셋 공장 건물은 지방의회 청사이자 도서관과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속옷 만들던 공장이 책을 빌려주고 지역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이 됐으니 공간의 재탄생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를 철거하고 아파트 올리고 보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1980년, 사이밍턴 코르셋 공장 건물은 지방의회 청사이자 도서관과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위키피디아)
주먹 하나로 유럽을 제패한 농부의 아들, 잭 가드너
잭 레너드 가드너는 1926년 11월 6일 마켓 하버러에서 태어나 1978년 11월 11일 뇌종양으로 쉰둘에 세상을 떠났다. 군인 출신인 그는 육군 근위대에서 복무하며 권투를 시작했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 1950년 영국 헤비급 챔피언, 이듬해 유럽챔피언에 올랐으며, 통산 28승 23KO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그의 외모는 당시 영화배우 에롤 플린에 필적할 만큼 출중했다고 한다. 잘 생기고 주먹도 강한 챔피언. 은퇴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그의 유골은 애지중지하던 마켓 하버러 근처 농장의 사과나무 아래에 뿌려졌다. 유럽챔피언이 농부로 생을 마감하고, 사과나무 아래 잠들었다. 어쩐지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 마을의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다.
잭 가드너(위키피디아)
마켓 하버러가 한국에 던지는 물음들
마켓 하버러는 대단하거나 특별한 도시가 아니다. 그것이 핵심이다. 화려한 대도시가 아닌 인구 수만의 작은 마을이 800년 넘는 장터를 지켜오고, 왕의 본부였다가 패배의 현장이 됐고, 노벨상 수상자를 길러냈으며, 공장을 도서관으로 바꿨다.
한국 사회는 지금 지방소멸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지방을 살릴 방법으로는 개발 과 이전 만 이야기한다. 대기업을 유치하고, 혁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을 옮긴다. 하지만 마켓 하버러는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지 않고 다른 용도로 바꾸고, 지역 출신 인물을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며, 장터 하나를 800년 동안 유지하는 힘, 그것은 화려한 개발이 아니라 기억과 연속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찰스 1세의 이야기. 왕이 마켓 하버러에서 마지막 군사회의를 열었을 때, 그의 참모 일부는 싸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왕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결과는 참패였고, 4년 뒤 그는 단두대에 섰다. 권력자가 쓴소리를 무시하는 순간, 역사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보여준다.
코르셋 공장이 도서관이 됐다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낡았다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방식이 아닐까.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 된 건물들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한국의 도시 풍경 앞에서 마켓 하버러의 코르셋공장 도서관은 조용히 다른 길을 제안한다.
귀리언덕의 작은 장터마을은 오늘도 화요일마다 장이 선다. 800년째.
마켓 하버러의 옛 문법학교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