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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히로시마 피폭 81주기…이젠 AI 자율무기 위험 논할 때

히로시마 피폭 81주기…이젠 AI 자율무기 위험 논할 때
[뉴스]
1945년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U.S. National Archives)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단 한 발의 원자폭탄은 도시 하나를 무너뜨린 사건을 넘어 국제질서와 인류 문명의 윤리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폭발의 직접적인 충격으로 수많은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방사선 피폭은 생존자와 그 후손들에게까지 오랜 세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날 희생된 이들에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으로 히로시마에 머물던 수많은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은 오랫동안 국제정치의 이해관계와 역사 인식의 틈새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히로시마는 더 이상 일본만의 비극도, 과거의 사건도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훼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류 공동의 기억이며, 국제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묻는 살아 있는 질문이다. 오늘날에도 핵무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반 자율무기체계라는 새로운 기술적 위협이 등장한 현실에서 히로시마의 교훈은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국제규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당시 핵무기를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국제조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적법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국제인도법의 본질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한 결과이다. 국제인도법은 특정 무기만을 열거하여 금지하는 체계가 아니라, 전쟁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한 보편적 원칙 위에서 발전해 왔다. 1907년 헤이그 육전규칙(陸戰規則)에서 시작된 민간인 보호 원칙은 이후 제네바협약과 국제관습법을 거치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마르텐스 조항(Martens Clause)은 명시적인 조약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인도주의 원칙과 공공양심의 요구가 무력행사의 한계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히로시마 원폭은 국제인도법이 요구하는 핵심 원칙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첫째, 구별의 원칙(Distinction Principle) 이다. 국제인도법은 군사목표와 민간인을 명확히 구분하도록 요구하지만 핵무기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구별이 불가능하다.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핵폭발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동시에 희생시키는 전형적인 무차별 공격이다. 둘째, 비례성(Proportionality) 원칙이다. 설령 군사적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군사적 이익보다 과도한 민간인 피해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히로시마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과 장기적인 방사능 피해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불필요한 고통(Unnecessary Suffering) 금지 원칙이다. 핵무기의 피해는 폭발로 끝나지 않는다. 방사선 피폭은 암과 유전적 질환, 정신적 트라우마를 세대를 넘어 지속시키며, 이는 단순한 군사적 효과를 넘어서는 비인도적 결과를 낳는다. 결국 핵무기 금지 조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원폭 사용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국제법은 조문의 유무보다 인간 존엄이라는 근본 원칙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창립 80주년 기념 주간 시작을 알리는 행사 2026.4.17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제사회의 이러한 인식은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핵무기의 위협 또는 사용의 적법성에 관한 권고적 의견」에서도 확인된다. ICJ는 핵무기의 위협과 사용이 일반적으로 국제인도법의 기본 원칙과 양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도, 국가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극단적인 자위 상황에서는 최종적인 적법성 여부를 단정하지 않았다. 이 권고적 의견은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국제법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정치의 현실이 국제법의 발전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군축을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로 선언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핵보유국들이 군비 현대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핵억제 전략은 여전히 국제안보의 중심에 놓여 있다. 반면 2021년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TPNW)은 핵무기의 개발·보유·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시했지만, 주요 핵보유국과 핵우산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국제법이 법률적 논리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정치적 의지와 국제사회의 합의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현실이 국제법의 원칙을 약화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제법은 힘의 논리를 견제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규범이어야 한다.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를 반복적으로 소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억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며, 미래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원폭 피해자 위령각에서 헌화를 하고 있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미국의 핵무기 투하 책임을 묻는 국제 민중법정 1차 토론회 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모습. 원폭 피해자 1135위의 위패를 모신 위령각은 1997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 태양회의 다카하시 고오준 이사장이 사비로 건립했다. 2023.6.12. 김성진 기자 특히 강제동원된 조선인 희생자들의 역사는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 정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결코 주변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피해자들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공동의 역사로 기억하도록 만드는 일은 단순한 역사교육을 넘어 이행기 정의 (Transitional Justice)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폭 피해에 관한 국제 아카이브 구축, 강제동원 피해 기록의 디지털 보존, 국제 평화교육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대상 국제교류 확대 등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정책이어야 하며, 기록은 추모를 넘어 국제규범을 만드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교훈은 핵무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류는 지금 또 다른 형태의 대량살상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 기반 치명적 자율무기체계(LAWS, Lethal Autonomous Weapon Systems)이다. 핵무기가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물리적 파괴력을 상징했다면, LAWS는 인간이 생명의 최종 결정을 기계에 위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한다.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표적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자율무기체계는 국제인도법의 핵심 원칙인 구별성, 비례성, 책임성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현재 유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정부전문가그룹(GGE)에서는 LAWS 규범 마련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회원국 간 입장 차이로 인해 아직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조약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규범 형성의 속도를 앞지르는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더 이상 사후 대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인간의 통제 (Meaningful Human Control) 기준을 국제적으로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인간이 생명과 죽음에 관한 최종 판단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국제 인도법의 핵심 가치이자 AI 시대에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다. 또한 알고리즘 편향, 책임 공백, 오작동 위험, 무기 확산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LAWS의 개발·생산·이전·배치·사용을 규율하는 국제조약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투명성 확보, 검증 메커니즘 구축, 국가와 개발자의 책임 규정, 피해자 구제 절차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거버넌스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히로시마의 버섯구름은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국제법이 해결해야 할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핵무기와 AI 자율무기는 시대와 기술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가. 국제법은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한 규범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핵무기의 비극이 국제인도법과 핵군축 규범을 발전시켰다면, AI 시대의 국제법은 자율무기의 위험을 규율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향한 추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국제사회의 책임이며,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국제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과 인간이 통제하는 AI는 서로 다른 목표가 아니다. 모두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국제법적 가치 위에 놓여 있다. 이제 국제사회는 그 교훈을 기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야 할 때이다.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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