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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김근태에 마음의 빚 고문 알고도 덮은 공안검사

김근태에 마음의 빚 고문 알고도 덮은 공안검사
[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김원치(金元治, 1943~2008) 항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사망 직전 출판한 회고록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에 대한 내 마음의 빚이 남아 있다. 그 는 김근태(1947~2011)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당한 채로 검찰에 송치됐을 때, 발뒤꿈치의 고문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입을 다문 담당검사 김원치.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마음의 빚 이었다. 마음의 빚. 이 말이 반성인지 변명인지, 자책인지 자기포장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김원치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이 지청에서 안기부의 북풍공작 수사 진행상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1998.3.7 연합뉴스 할아버지가 당했는데 주민과 군을 이간질하려는 작전 김원치는 1943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4·3사건의 직접 피해자였다. 1948년 11월 28일 그의 할아버지는 군인들의 총탄을 왼쪽 허벅지에 맞아 평생 불구가 됐다. 김원치는 이 사건에 대해 게릴라들이 군인복장으로 갈아입고 군인들이 마을에 불을 지른 것처럼 위장해 주민과 군을 이간질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을 것 이라고 추측했다. 국군은 가해자일 수 없다는 그의 극우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이것이 제주사람들의 집단기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조용히 기록한다. 제주 4·3 피해자 집안 출신이,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 후손이, 국가권력의 공안검사가 돼 민주화운동가를 탄압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의 비극은 종종 이렇게 순환한다. 1961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김원치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서울법대를 나왔다. 사법시험에 낙방한 뒤 제주여고에서 교사로 일했는데, 당시 그의 제자 중 하나가 훗날 탤런트가 된 고두심이었다. 이 대목이 묘하다. 다정다감했을 젊은 교사가 1971년 늦게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고, 1980년대에는 서울대 공안검사로서 악명을 떨치게 됐다.   김원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번민하는 공모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에 직접 참여하면서도 사후에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 이라고 주장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인물. 내면에서 갈등하면서도 결국 체제의 요구에 따른 법률가들이다. 독일의 한스 프랑크(Hans Frank, 1900~1946)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법률고문으로 시작해 점령지 폴란드 총독이 됐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 직전 그는 천 년이 지나도 독일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 말했다. 진정한 회개인지 죽음 앞의 공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은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김원치의 마음의 빚 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빚은 있었지만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고문을 알고도 덮었고, 고문피해자에게 접견을 금지했고, 중형을 구형했다.    1939년의 한스 프랑크(위키피디아) 1980년대 서울대 담당 공안검사, 서울대 전문검사 1980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발령받은 김원치는 서울대와 구로공단을 관할하며 공안검사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 1985년 서울대 깃발 사건, 1985년 민추위 사건, 1985년 삼민투·미문화원 점거 농성, 1986년 건국대 점거 농성. 이 굵직한 공안사건들 거의 전부가 김원치의 손을 거쳤다. 언론은 그를 서울대 전문검사 라고 불렀다. 운동권의 인적 계보와 최근 동향을 가장 소상하게 파악한 검사라는 뜻이었다. 자랑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서울대 깃발 사건 피해자 황인상은 수사과정을 이렇게 증언했다. 고문이 일단 끝난 뒤 형사들은 김원치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나리오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그 뒤에 남부지청장과 김원치 검사는 축배를 들고 부하들과 승진을 자축하기 위해 아지트 서림장 여관으로 왔다. 고문 현장의 소식을 받고 축배를 든 검사. 또 다른 피해자 최용석은 고문 후 검사실로 끌려갔을 때를 이렇게 증언했다.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돼 있었는데 김 검사는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다. 나중에 변호사가 된 최용석은 김원치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악명 높은 고문검사가 강직한 검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상상 못할 위선적인 인물이다.   김원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5년 김근태, 고문을 눈앞에서 보고도 외면했다 김원치 이력의 정점은 1985년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 사건이다.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1941~2026)에게 23일간 전기고문을 포함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검찰로 송치된 첫날, 변호사 김상철이 검사실에 들어와 김근태로부터 고문 피해 증언을 직접 들었다. 김원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김근태는 양발 뒤꿈치의 고문 상처를 직접 보여주었다. 김근태는 고문받은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는 김원치의 회고록 기술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그의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 상처를 직접 보여주었고 고문 사실을 말했다. 검사의 그 눈빛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김원치는 고문 사실을 확인했지만 덮었다. 가족면회를 100일 가까이 금지했다. 이유는 증거 인멸 우려 였다. 김근태는 이 조처에 대해 면회 금지는 고문의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서 내려진 것 이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김원치의 얼굴이 열을 받은 듯 붉어지더니 하얘졌다 고 기록돼 있다. 고문공개 대책회의에도 참석했다는 증언이 있다. 김원치는 이를 부인했다. 상부는 수사를 봐줬고, 공소시효 문제로 결국 처벌받지 않았다. 김원치는 2008년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가혹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반인간적, 반헌법적 행위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쓴 사람이 그 반헌법적 행위를 눈앞에서 보고도 덮은 사람이었다.   ▲양손에 포승줄을 한 채 밝은 미소를 짓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마음의 빚 의 실체, 반성인가 자기포장인가 김원치는 같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공안검사로서 받았던 비난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 썼다. 그러면서 자신의 구체적 행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사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반론적인 언급만 할 뿐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례나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의 평가다. 또한 노무현(1946~2009) 정부에서 검찰개혁 논의가 일자, 그는 검찰 내부망에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글을 올렸다. 검사들의 기득권 지키기를 조장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 이것이 마음의 빚 의 실체였다.   김원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 부역자들이 뒤늦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회고록을 출판하는 경우가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런 회고록을 읽을 때 이렇게 묻는다. 이 고백이 진정한 반성인가, 아니면 사후적 자기 정당화인가? 그 질문이 김원치의 마음의 빚 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김근태는 2011년 12월 30일 사망했다. 평생 고문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다. 그가 사망하기 23년 전에 출판한 『남영동』은 한국 인권역사의 고전이 됐다. 그리고 그를 고문한 이근안은 1999년 자수해 처벌받았고, 고문을 지시한 박처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고문을 알고도 덮은 공안검사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김원치를 떠올렸다. 고문을 눈앞에서 보고도 마음의 빚 으로 봉인한 사람. 제주 4·3의 피해자 집안에서 자랐으면서도 국가폭력의 집행자가 된 사람. 그 두 얼굴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는 것. 그것이 한국 현대사 공안권력의 가장 음험한 초상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김원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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