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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위 눈치보는 ‘천수답 외교’에서 ‘관개 외교’로 전환해야

위 눈치보는 ‘천수답 외교’에서 ‘관개 외교’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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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 농사를 짓는 방식을 ‘천수답’ 농법이라고 부릅니다. 가뭄이 들면 속절없이 타들어 가는 작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원시적인 방식입니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한국 외교의 모습이 천수답 농법을 닮아 보입니다. 현재 한국 외교에서 ‘하늘’은 대통령의 입이거나, 상전처럼 숭배하는 미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수답 방식이라도 자국 대통령의 말을 따른다면 대외적으로 주체적이라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뜻보다 미국 눈치를 먼저 살핀다면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정부나 기업, 사회단체를 가리지 않고 잘 돌아가는 조직은 윗사람의 눈치만 보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알아서 능동적으로 앞장서서 하는 조직입니다. 유능한 참모라면 상사의 뜻을 미리 헤아려 먼저 움직일 것입니다. 거꾸로 된 대통령과 외교·안보 관료들의 관계 최근 벌어진 이스라엘의 한국인 구호 활동가 구금 사태는 한국 외교·안보 관료들의 ‘천수답 외교’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민간 구호선단이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 나포되고 자국민이 억류되는 명백한 불법 폭거가 발생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이 최소한의 국제 규범을 다 어기고 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까지 검토해 보자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사태를 대하는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관료들의 반응은 딴판이었습니다. 관료들이 먼저 분노하고 대통령이 말려야 할 상황인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은 자국민의 안위보다 이스라엘이 관할권을 주장한다”라거나 교전 상태에서 해상 봉쇄 조치는 합법적이라는 반박이 있다”라며 침략국 이스라엘의 해명을 대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의 눈치를 살피듯 논란이 되는 이슈”라며 맹탕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한국 외교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미국 눈치만 보며 주체적 판단을 내려놓는 관료들의 숭미주의 체질이 고스란히 국민 앞에 노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2026.5.21 연합뉴스 외교부가 이스라엘 대사대리를 불러 한국 활동가 구타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것은 이 대통령의 발언 3일 뒤, 활동가가 석방된 지 이틀 뒤였습니다. 그것도 비공개로 불렀다가 뒤늦게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수동성은 이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 눈치만 보는 관료들의 숭미주의 동맹관 이 대통령이 외국군에 의존하지 않는 국방 태세를 강조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사실상 주한미군의 해외 발진 기지화-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외교·안보 당국의 눈에 띄는 후속 움직임은 찾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략적 유연성과 전시작전권을 두고 노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자주적인 발언을 쏟아냈지만, 친미·숭미 관료들의 저항으로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재명 정권에서도 관료들이 시간끌기로 저항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외교·안보 관료들은 한미동맹의 굴레 속에서 주권국으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언행에 대한 대응입니다. 그가 한국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빗대고, 전시작전권 반환에 대해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등 ‘주한 미국 총독’을 방불케 하는 주제넘은 발언을 잇달아 해도, 이를 제지하거나 항의하는 관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러니 한국의 외교·안보 문제를 쥐락펴락하는 하늘이 ‘미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과거 지운 미래지향’, 피해자 분노 쌓인다 일본과의 관계는 또 어떻습니까.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안동에서 열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 협력’과 ‘셔틀 외교’를 강조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미국-이란 전쟁이 끝나지 않고 미-중 세력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동병상련의 처지인 한일 두 나라가 과거사 갈등을 억제하고 에너지·공급망·안보 문제에 협력의 중점을 두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가 현재의 우호 분위기만 앞세워 한일 관계의 근본 문제인 과거사를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관계가 좋을 때야말로 어려운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진전시킬지 치밀하게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이 대통령도 지도자 간의 신뢰를 토대로 과거사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1월의 나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의 안동회담에서도 ‘조세이 탄광(장생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유전자(DNA) 감정 착수’ 정도의 실무적 합의만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수몰된 유해 183구 전체의 공동 발굴이 아니라, 민간단체가 이미 발굴한 유해 5구에 대한 유전자 검사에 그쳤습니다. 물론 작은 진전이라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굵직한 과거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런 답답함은 외교 관료들이 겉으로만 미래지향을 외칠 뿐, 과거사를 실질적으로 풀어 나가라는 대통령의 의지를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과거사 피해 당사자와 지원단체들은 지금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으로 폭풍 전야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 없는 미래는 없는데, 관료들은 과거를 지운 미래만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8월 광복절 경축사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경축사에서도 구체적인 과거사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합니다. 외교뿐 아니라 행정 전반이 능동적으로 변해야 관료들의 천수답 체질은 외교·안보 분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내 일반 행정에서도 이런 체질이 만연해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장동 그분’과 관련된 명백한 오보를 낸 동아일보와 해당 보도에 상을 준 한국신문협회에 시정을 요구했는데도,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나 책임자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극우 세력의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서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됩니다. 관련 부처가 먼저 감지하고 대처하기보다 대통령이 먼저 지시하고 나서야 뒤따라 대책을 내놓기 일쑤입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만기친람식 행정의 민낯입니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이제 약 일주일 뒤면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 지 만 1년이 됩니다. 언제까지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하늘만 쳐다볼 것입니까. 국정의 모든 현안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천수답 외교’, ‘천수답 행정’으로는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복합 위기를 결코 돌파할 수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 2년 차부터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관료 조직 스스로 다가올 가뭄과 홍수를 내다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관개 외교’, ‘관개 행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전의 눈치나 살피며 책임을 회피하는 타성을 끊어내고, 철저히 국익과 국민을 중심에 두는 주권 국가의 기틀을 다져야 할 때입니다. 스스로 물길을 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자에게 결코 풍년은 오지 않습니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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