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만은 빼달라 했지만…EU, CBAM 완화 요구 퇴짜 [국제] EU 회원국들이 비료 면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CBAM 비상정지 요건 강화에 합의했다. / 출처 = Unsplash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6개월 만에 제기된 첫 완화 요구가 사실상 무산됐다.
12일(현지시각) 유렉티브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CBAM 비상정지 조항의 발동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올해 초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비료 가격 급등을 이유로 면제를 요구했지만, EU는 예외 확대보다 제도의 신뢰성과 투자 예측 가능성을 택했다.
비료값 급등에 흔들린 CBAM…프랑스·이탈리아 면제해달라
CBAM이 1월 1일 본격 시행된 직후 프랑스 정부는 비료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프랑스 농업장관 아니 즈느바르(Annie Genevard)는 1월 7일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 비료에 대한 탄소국경세 적용을 중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논의는 곧 공식 요구로 이어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3월 30일 EU 이사회에 제출한 공동 서한에서 비료와 암모니아에 대한 CBAM 적용을 2026년 1월 1일로 소급해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천연가스 가격 상승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비료 수입 차질로 농가 부담이 급격히 커졌다는 이유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비료 가격 상승이 농가 부담을 키우고 식량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행 직후부터 비료를 CBAM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라 제기된 배경이다.
하지만 6개월 뒤 결론은 정반대로 흘렀다. EU 회원국들은 비상정지 조항을 유지하되 발동 조건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에 합의했다.
왜 EU는 정지 문턱을 높였나
비료 가격 부담에도 EU가 정반대 결론을 내린 배경에는 CBAM의 신뢰성 논란이 있었다.
유럽 환경단체 벨로나 유럽(Bellona Europa)은 2월 발표한 분석에서 CBAM 비상정지 조항인 27a조가 기업의 투자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정지 요건은 심각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 이라는 표현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경우에 제도가 중단되는지 기준이 모호해 기업들이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배출권거래제(ETS)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CBAM은 ETS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수입품에도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구조다. 특정 품목의 CBAM 적용이 중단될 경우 EU 기업만 탄소비용을 부담하게 돼 경쟁 조건이 왜곡될 수 있다.
결국 회원국들은 비상정지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발동 조건을 구체화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12일 합의안은 가격이 직전 10년 평균보다 6개월 동안 50% 이상 상승한 경우에만 집행위원회가 정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최종 결론은 아직…EU 의회와 추가 협상 남아
이번 합의가 최종 결론은 아니다. EU 회원국들은 이번 합의안을 바탕으로 유럽의회와 최종 협상에 들어간다.
회원국 내부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는 이번 합의에 반대했다. 반면 다수 회원국은 가격 충격을 이유로 CBAM을 쉽게 멈출 경우 제도 전체의 신뢰성과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프랑스는 비료 면제 요구에서는 물러섰지만 일부 예외는 확보했다. 이번 합의에는 프랑스 해외 영토인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가 자연재해나 비상 상황 때 시멘트 수입품에 대한 CBAM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비료 전반에 대한 면제 대신 제한된 예외 조항을 얻어낸 셈이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비상정지 조항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발동 문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이번 결정이 EU 역내 저탄소 투자에 더 큰 확실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