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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민중미술 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민중미술 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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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은 서양의 것을 수입해 우리나라화한 것이라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믿고 있다. 다른 예술들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던 시절, 우리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을 딛고 가장 서양적인 것을 가장 서양적으로 완벽하게 해낸 예술가들, 운동선수들을 영웅화시하곤 했다. 나도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성과를 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물론 예술은 동·서양을 넘어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는 명작 앞에서 할 말을 잃곤 한다. 명작들은 동서양을 뛰어넘어, 국적과 정치를 뛰어넘어 인간의 깊은 심연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흐의 작품을 보고 그것이 서양에서 온 후기인상파 작품이라고 해서 제국주의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예술은 이미 인간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의 영토, 어떤 느낌의 지대를 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던 일이 있다.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대속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대신 겪어내어 그 고통을 겪어냈음을 화폭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줄 수 있으니 예수와 비슷하다고. 그러나 우리는 예술 앞에서 잔인한 딜레마에 빠져 있기도 하다. 바로 문화적 패권과 사대주의에 관한 것이다. 예술에서의 이 문제는 복잡미묘한 것이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 최고의 미술학도들과 화가 지망생들이 모였던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의 전신) 미술학부에서 수묵이 아닌 유화 물감을 잡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어느 화가가 수묵이 아닌 유화 물감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한껏 펼쳤다고 해서 그를 사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쉽게 예라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황재형의 그림 멈추어진 시간 . 이 부분에서 문화적 패권의 치명적 허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서양적 표현의 수단’을 가지고 동양인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서양화가 되는가, 동양화가 되는가? 만약 서양적 표현의 수단을 가지지 않고도, 즉 대학을 갔는데 잡게 된 것이 유화 물감이 아니라 수묵이었어도 그 시절 한국 화단에서, 나아가 세계 화단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적 환경이었다면 그는 당연하다는 듯 유화 물감을 들지 않아도 되었을까? 이러한 ‘수단의 모순’은 시에도, 소설에도, 회화에도... 심지어는 철학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아득히 넘어서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컨대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의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또한 서양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근대화된 교육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쓰고 읽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 지식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역시 서양의 근대 학교 모델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정신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을 이식했을 때 문화적 위계는 극복할 수 없이 강한 것이 된다. 아기는 처음 배운 언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근대 미술가들도, 시인들도, 소설가들도 처음 배운 언어, 즉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적 언어를 어쩔 수 없이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극이자 필연으로, 우리는 한편으론 그들-우리가 사랑하는 한국의 예술가들-의 정신에 몰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상의 역사를 써 보기도 한다. ‘만약 그 때 서구화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질문에 의거해 80년대 운동권은 연극 등을 통해 우리 고유의 민족성을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물론 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컸지만, 거시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일제에 의해 사장된 우리의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운동이기도 했다. 우리의 미술계에도 자생했던 화파가 있었다. 바로 민중미술이다. 민중미술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주로 현실참여적이고 고발의 성격이 짙은 방향으로 흘렀다. 민중미술이 정치적이었다는 비평이 있지만 나는 이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민중미술가들은 정치적 이념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 앞에 놓인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결과론적으로 정치적이 된 것이다. 물론 아예 애초부터 대단히 정치적인 작품들도 존재했지만, 그것들이 민중미술을 대표한다는 해석은 오히려 군사독재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지금, 민중미술을 과거 한때 있었던 유파로 해석하면서 덧붙여진 것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중미술은 그것에 붙어버린 ‘민중’이라는 단어의 정치성 때문에 때로 그 작품성이 낮게 평가되거나(정치적 목적의 회화는 순수회화보다 작품성이 낮게 평가된다), 민중미술의 시대가 지나간 이후 대형 화랑들에 의해 민중미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팔리는 작품들에 역사성을 더하기 위해 붙여진 정치성에 의해 대단히 정치적이고 일시적인 미술 운동으로 평가받곤 하지만, 사실 민중미술 화가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미술에 ‘민중 미술’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예컨대 리얼리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천사를 그리려면 나에게 천사를 직접 보여달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처럼, 우아한 화폭 너머의 현실, 그늘진 곳, 비참한 사람들과 마을들을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민중미술 화가들을 사로잡은 것은 추상화의 고매함보다 당장 그들 앞에서 마치 버려진 새처럼, 노예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자, 그들 예술세계의 장력은 마치 그려야 하는 대상을 강요받은 듯이 그들을 향했다. 에서 독일의 시인 릴케는 필연만이 진정한 예술을 탄생시키므로 반드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외에는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이처럼 예술적 대상과 예술가 사이에 거부할 수 없는 장력이 형성되어 버린다면 예술가는 앞으로 어떤 운명이 닥치더라도 예술적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릴케의 시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시들을 보면 오히려 대표적 고발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의 시보다 더욱 치명적으로 리얼리즘적이다. 민중미술 화가들은 탄광촌, 농촌, 민주화 투쟁 현장 등에 갔다. 그네들 중에는 현실 참여를 마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한 이들이 없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의 행보에 그들의 예술적 운명이 걸려 있었고 당시 시대의 엄혹한 분위기를 본다면 거의 일단은 자발적이었다고 보아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붓은 역사의 압력이 가장 짙고 무거웠던 쪽을 향했으며, 그 피해자들을 쫓아다녔다. 그들은 역사의 질감을 그려내기 위해 기법을 발명했고, 당시 아카데미에서 지배적이었던 유화 기법을 쓰지 않았다. 한 번 민중미술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의 작업실을 어느 큐레이터와 함께 방문했던 일이 있다. 그는 정치적 작가라기보다 그냥 화가였다. 그의 기법은 충분히 독특했고, 산, 하늘, 길, 나무, 논밭 등 평범한 대상을 이제는 그리고 있었다.   민정기의 그림 벗고개 . 민중미술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되면서, 그리고 한국의 대형 화랑들이 국제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품화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품화된 작가와 상품화되지 못한 작가가 나뉘어버렸다. 이것이 내가 화가들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 이유이다. 민중미술의 원형을 보기 위해 필요한 작가들은 이미 대형화랑과의 계약을 거절하거나 상품성 면에서 대형화랑과 컨택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숨어 있으며, 그들을 정의롭고 섬세한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숨어 있는 채로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경제 발전에 따른 화랑들의 대형화와 국제화가 민중미술을 ‘한때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존재했던 저항 미술’로 가두어버렸지만, 민중미술이라는 이름 자체도, 또 민중미술을 대하는 태도도 ‘진짜’ 민중미술 화가들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민중미술이 있기 이전과 이후, 한국의 미술계는 서양을 따라하기 바빴다. 그러나 민중미술 화가들은 달랐다. 그들의 그림은 어떤 심오한 의미를 담은 그림이 아니라 나의 그림이었기에 당당했고, 그들이 발명한 기법은 결코 서양적이지도, 또 완전히 동양적이지도 않은, 한국의 현실에 맞는 것이었다. 예술, 그것도 예술사 안에서 어떤 권위를 획득한 예술은 늘 이미 있던 것들의 틈새를 파고들며, 독창성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중미술을 한국에서 자생했던 회화이자, 한국 회화의 주축이 될 수도 있었던 주체적 회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논고 속에는 복잡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담긴다. 나는 질문하곤 한다. 만약 그 주체적 회화가 민중미술이라는 정치적 틀에 갇히지 않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한국의 동시대 회화사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세계적 헤게모니 전쟁 속에서 독립성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만 나는 상상해보는 것이다. 만약에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화풍을 지닌 민중미술이 그저 한때 존재했던 정치적 사조로 끝나지 않고, 한국 미술의 명맥을 이어갔더라면. 나의 소망을 공유하고 함께 상상하고 싶다면, 황재형과 민정기의 그림을 찾아보라.  권윤지 작가 dookj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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