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고도와 박제된 소망, 숨어 계시는 신 [칼럼]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년 4월 13일~1989년 12월 22일)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신이 부재하는 암흑 속에서 인간이 겪는 존재론적 위기와 구원에 대한 절망적 갈망을 종교적 상징과 반어법으로 해부해 낸 현대의 신학적 묵시록이다. 이 텍스트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독단과 맹목적 신앙을 냉소하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역설적으로 신성이 소멸된 세계, 즉 신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영적 기근과 존재의 부조리를 가장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부랑자가 정체 모를 인물 고도(또는 고도우) 를 마냥 기다리는 가혹한 행위는 성서적 계시가 끊긴 시대에 인간이 처한 영적 마비 상태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과 종말론적 소망이 기약 없는 기다림과 침묵의 형벌로 변모할 때, 인간의 모든 존재가 어떻게 해체되고 파편화되는지를 소제목 없이 이어지는 이 긴 사유를 통해 신학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극의 가장 핵심적인 알레고리는 단연 베일에 가린 고도 라는 존재다. 비록 베케트는 고도가 하나님(God)을 뜻하느냐는 질문에 만약 신을 의미했다면 신이라고 썼을 것이라며 직접적인 등치 관계를 부인했으나, 작품 곳곳에 흩어진 성서적 메타포와 언어적 유희는 고도가 신성(Divinity) 혹은 초월적 구원자의 변주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고도는 언어적으로도 God 에 프랑스어식 지격 접미사 ot 가 붙은 형태로 읽힐 수 있으며, 극 중 고도가 하는 일로 묘사되는 염소와 양을 기르는 행위,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 그리고 부랑자들에게 구원이나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대목은 영락없이 구약 성서의 창조주나 복음서의 심판주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극이 지닌 신학적 비극은 그 전능해 보이는 구원자가 오지 않는다 는 사실, 그리고 오직 침묵과 대리인인 소년을 통해서만 연기된 약속을 갱신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고전 신학이 다루어 온 신의 침묵 혹은 신의 숨어 계심(Deus absconditus) 이라는 난제와 맞닿아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신들이 고도에게 구원을 청했고, 고도가 그것을 검토한 뒤 집에 가서 조용히 생각해 보고, 가족들과 상의하고, 장부와 통장을 확인한 뒤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답했다고 회상한다. 여기서 묘사되는 신의 모습은 인간의 고통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아니라, 지독하게 관료적이고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인간을 수치화하는 냉담한 절대자다. 신이 인간의 삶에서 주권적 통치력을 상실하거나 의도적으로 은폐될 때, 인간이 발 딛고 선 세계는 질서를 잃고 부조리 라는 이름의 카오스로 전락한다. 창조의 질서가 사라진 무대는 오직 잎새 몇 개가 돋아나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와 황량한 길가로 축소되며, 시간마저도 어제와 오늘, 내일의 경계가 무너진 채 영원히 순환하는 지옥 같은 연옥의 상태로 고착된다.
사뮈엘 베케트
이러한 영적 영겁 회귀 속에서 두 부랑자가 나누는 대화는 복음의 변질과 계시의 불확실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극의 초반부, 블라디미르는 십자가 처형 당시 예수의 좌우에 매달렸던 두 도둑의 구원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사복음서 중 오직 한 복음서(누가복음)만이 한 도둑이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나머지 복음서들은 침묵하거나 둘 다 예수를 모욕했다고 전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블라디미르의 독백은, 인간이 매달리는 구원의 확신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과 텍스트의 모호성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면, 왜 네 명의 복음서 저자 중 한 명만 그 이야기를 하고, 왜 사람들은 그 한 명의 말만 믿는가? 라는 질문은 신학적 정통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낳는다. 인간은 구원의 약속을 굳게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 그 믿음의 기반은 실존적 공포를 가리기 위한 가냘픈 연극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에스트라공이 던지는 우리가 죄를 지었나? , 우리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가? 라는 질문은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강한 신학적 비판을 내포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규정되며, 신의 은총 없이는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베케트의 무대 위에서 인간은 존재 자체로 이미 형벌을 받고 있는 상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굶주림과 추위, 부츠가 맞지 않는 육체적 고통과 밤마다 누군가에게 매를 맞는 폭력에 노출된 에스트라공에게 원죄론은 신의 정당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존재를 억압하는 부조리한 굴레로 다가올 뿐이다. 그들에게 존재는 신의 선한 창조의 결과물이 아니라, 원치 않게 던져진 피투성(Geworfenheit)의 감옥이며, 그 감옥 안에서 인간은 고도라는 존재가 부여한 막연한 채무감 때문에 스스로를 나무 곁에 묶어두는 영적 노예 상태를 유지한다.
인간 존재의 왜곡된 연대와 타락은 2막에서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의 관계를 통해 더욱 잔인하게 묘사된다. 신학적으로 포조와 럭키는 신과 인간, 혹은 인간들 사이의 철저한 소외와 위계적 폭력을 상징한다. 포조는 럭키의 목에 밧줄을 매고 채찍을 휘두르며 그를 짐승처럼 부리는데, 이는 타락한 피조물들이 서로를 착취하는 왜곡된 인간 관계의 극단이다. 흥미로운 것은 1막에서 신학적, 철학적 사유를 쏟아내던 지식인인 럭키가 2막에 이르러서는 벙어리가 되고, 그를 지배하던 당당한 포조는 소경이 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시간의 종말론적 파국을 보여준다. 어떠한 구원도 신적 개입도 없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이성(럭키)은 침묵 당하고, 인간의 권력과 물질적 교만(포조)은 영적 맹목 상태에 빠진다. 눈이 먼 포조가 시간이 언제 흘렀냐고 절규하며 인간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가랑이 사이로 아이를 낳고, 빛은 잠시 비추다 다시 밤이 된다 고 외치는 대사는, 신이 부재하는 역사관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허무주의와 종말론적 절망을 압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을 가득 채우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기다림 을 포기하지 않는 부랑자들의 신앙적 태도에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기다림의 상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가 아니라, 기다리는 대상의 힘에 이미 붙잡혀 있는 상태 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끊임없이 자살을 결심하고 이 황량한 자리를 떠나려 하지만, 결코 떠나지 못한다.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가 사방에 가득하고 소년의 전갈이 매번 똑같은 거짓말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들은 다음 날 같은 나무 아래로 돌아온다.
이 끈질기고 맹목적인 회귀는 신앙의 본질적 속성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를 기괴하게 모방한다. 그들은 고도라는 신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소망을 버리는 순간, 자신들의 삶이 완전히 무(Nothingness)로 소멸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기다림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객관적 증명이 아니라, 신이 부재하면 인간은 1초도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없다는 인간 실존의 비극적 종속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신학적 행위다.
결론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는 신을 잃어버린 현대인이 겪는 영혼의 밤을 영감 가득하게 그려낸 반-신학적(Anti-theological) 대작이다. 베케트는 전통적인 유신론적 위로를 철저히 거부하며, 값구렁이 같은 값싼 은혜나 기적적인 구원의 해피엔딩을 무대 위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러나 구원자가 오지 않는 비극을 이토록 처절하게 노래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인지를 가장 강력하게 웅변한다.
무대 위의 나무는 2막에서 비록 겨우 서너 개의 잎사귀를 틔우며 미약한 생명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두 주인공은 여전히 갈까? 가자 라고 말해놓고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이 마비된 결말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참된 신성 없이 홀로 설 수 있는가, 아니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스스로 만든 종교적 환멸 속에 박제되어 갈 것인가. 베케트는 신학의 종말을 고하는 방식을 통해, 도리어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초월과 실존의 회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원의 진공 상태 속에서 통렬하게 복기하도록 이끈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