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밈 으로만, 문사철 외면이 낳은 결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달 국내 주요 기업의 주가가 크게 뛰자 기업의 총수 얼굴을 합성한, 이른바 ‘총수 밈(Meme)’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차에 타라는 듯 손을 내밀고, 자막으로는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타! 라고 말한다.
지난해 ‘깐부회동’도 밈 열풍을 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치맥 회동을 가졌는데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세 기업의 총수가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 2023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 깡통시장을 방문했던 이재용 회장이 잘생겼어요 라는 행인의 말에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쉿 하는 동작을 해보여 쉿재용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20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탈모 밈 이 유행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멸콩 밈 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통령과 관련해선 최근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의 2018년 방영된 프로그램 파타야 살인 사건 과 관련, 영화 장면을 따온 아수라 밈 이 유행했던 아픈 역사 도 있다. 유력한 정치인의 앞날을 망치려 했던 시도에 이용된 측면도 존재한다.
이처럼 모든 사회적 논쟁이 ‘밈’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게 밈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컸던 이재명 대통령이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에 공식 계정을 통한 디지털 소통 효과를 보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개설 19일 만에 팔로워 18만 2000명을 돌파하며 빠른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새로운 접근은 1020 청년층을 노린 행보로 보인다. 시각적 자극을 강조하는 틱톡은 대통령이라는 인물 의 호감도와 친밀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특성을 갖는다. 1020 세대의 지지율이 다른 연령대에 견줘 낮게 나오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복잡다단할 수 밖에 없는 정책들이 짤로 요약되고, 역사적 사실은 밈화되며, 복잡한 사회 구조는 감정적 구호로 대체되는 현상을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자신의 머리로 사색하고 고민하지 않고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와 비유에 반응하며 살아간다면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인터넷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인터넷은 촉매였을 뿐, 밈적 사고의 뿌리는 훨씬 깊고 오래 됐다고 생각한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지 않았고, 문사철(문학·역사·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을 등한시해 온 결과라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틱톡 계정에 첫 인사 영상을 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틱톡 계정
깊이 없는 사고는 서사 훈련의 부재”에서 나와
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 사회의 반복과 변동”을 볼 수 없다. 철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개념을 구분하고 논리를 세우는 법”을 체득하지 못한다. 이 세 가지가 부족한 인간의 사고 능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이 바로 밈이다..
-생각 대신 반응부터 한다.
-논증 대신 ‘감정적 프레임’을 붙인다.
-맥락 대신 짧은 문장 하나를 무한 반복한다.
이쯤 되면 사회적 토론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무엇이 옳은지 따지기 전에, 사람들은 밈 으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밈적 사고는 결국 독서 없는 성장”의 결과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는 문장을 길게 따라가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글을 이해하는 근력, 개념을 연결하는 힘,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 아이는 자라서 ‘짧은 것’만 이해하는 어른이 된다. 10초 짜리 숏폼, 20자 짜리 댓글, 자극적인 제목, 단정적인 문장, 조롱과 비유만 남은 짤 등.
이런 것들만 인지적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사안일수록 더 단순한 구호나 밈으로 환원하려 한다. 그 결과, 사회는 합리 대신 단순화, 사유 대신 반응, 맥락 대신 프레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인문학의 쇠퇴는 사회적 능력의 붕괴였다
문사철이 사라진 교육은 단순히 인문학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다음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사고 근육이다.
-문학은 감정의 깊이를 길러 준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을 제공한다.
-철학은 판단과 논증의 기초를 준다.
이 세 가지가 약해지면 사람들은 쉽게 선동되고, 쉽게 분열하며, 쉽게 극단으로 치우친다. 밈적 사고는 그 약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이다. 사유 없는 사회는 결국 여론이 아니라 ‘밈의 집합’이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게 된다.
문사철을 버린 사회가 낳은 부작용 필연
한국은 오랫동안 인문학을 ‘밥 안 되는 공부’로 취급했다. 문학·역사·철학은 진학과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외면당했다. 그 결과,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됐다.
사회 갈등을 조정할 능력의 붕괴, 정책을 이해하는 능력의 실종, 대중 여론의 극단화, 사실과 감정의 구분 실패, 공론장의 수준 저하 등등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밈적 사고는 알고 보면 문사철을 버린 대가로 겪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과다.
밈의 시대를 멈추는 유일한 길, 다시 인문학으로
밈적 사고는 인터넷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활양식이다. 따라서 해결책도 명확하다. 문사철을 되살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길고 어려운 글’을 이해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개념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회는 ‘밈’의 속도를 벗어나 다시 ‘생각’의 깊이와 속도, 방향을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