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가는 발판 ‘뉴 이재명’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오랜 숙원은 지역 정당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40년을 기다려온 그 꿈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리얼미터 조사에서 50%에 근접했고, 오랜 험지였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도 국민의힘과 대등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갤럽과 NBS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5%를 웃돌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변화의 동력은 중도층의 대규모 유입이다. 대미 관세 협상, 주가 안정, 부동산 정책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낸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주의 노선이 탈이념적 유권자들을 끌어들였다. 한겨레의 3차례 패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뉴이재명 지지층은 전체 유권자의 13~15%, 이 대통령 지지자 중에서는 약 20%에 달한다. 정당 지지도에서 중도층은 민주당 45%, 국민의힘 15%로, 민주당의 압도적 우위가 확인된다. 총선과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중도층 지형이 이토록 유리하게 기울어진 적이 없었다.
코어 지지층과 ‘뉴 이재명’ 지지층 간 갈등 빚은 중도층 유입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지지층이 급팽창하면서 전통적 코어 지지층과 새로 유입된 뉴 이재명 지지층 간의 충돌이 표면화됐다. 1당원 1표제 도입,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검찰 개혁 방향을 둘러싼 대립은 당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만큼 격렬했다. 특히 검찰개혁에 대한 당정의 태도가 미온적인 것으로 비치면서 코어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으나, 이 대통령이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쪽으로 결단을 내리면서 일단 봉합됐다.
이 갈등의 성격은 과거 민주당의 계파 갈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과거의 분열은 공천과 당권을 둘러싼 의원들 간의 권력투쟁이었다. 반면 이번 충돌의 주체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중도층이다. 민주당이 지난 40년간 지지층으로 획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던 중도층이 마침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지층은 코어 지지층과 부딪치면서 긴장을 동반한다. 민주화투쟁 세대로 대표되는 코어 지지층은 민주주의 수호와 검찰개혁 같은 가치 중심의 정치를 우선시한다. 반면 뉴 이재명 지지층은 이념보다 실용과 경제 성과를 중시하며, 당 조직보다 대통령과의 직접적 교감을 선호한다. 이 이념적 스펙트럼의 충돌은 중도정당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정치적 성장통이다.
문제는 당 지도부의 구태의연한 대응 방식이었다. 야당 시절의 강성개혁 노선을 고수하면서 중도 지지층의 반감을 키웠고, 갈등이 불거지자 구태의연한 조직 대결 방식으로 맞대응하며 균열을 심화시켰다. 코어 지지층은 SNS에서 뉴이재명 지지층을 뉴수박 , 극우 프락치 로 몰아붙였고, 상대편은 운동권 기득권 카르텔 로 응수했다. 현재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의 밀착으로 극우화되어 지지율 20% 수준의 왜소한 정당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새로 유입된 중도층을 적대시하는 것은 민주당 스스로 집권 능력을 갉아먹는 자충수다.
비슷한 상황에서 정반대 결과 낸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
이 갈등은 유럽 진보정당들이 이미 통과했던 길이다. 영국 노동당은 18년 보수당 장기집권을 끝내기 위해 과감한 변신을 택했다. 40대 초반의 토니 블레어는 사회주의 정당의 상징인 당헌의 생산수단 공공소유 조항을 폐기하고 뉴 레이버(New Labor) 를 선언했다. 사회주의 강령을 내건 계급정당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는 냉철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블레어는 당내 좌파의 격렬한 반발을 높은 당내 지지를 무기로 돌파하며 제3의 길 이라는 중도 노선을 관철시켰고, 노동당은 사상 최초로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블레어의 중도 노선이 성공한 진짜 이유는 코어 지지층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집권 후 국가 최저임금제 도입, NHS 예산 대폭 증액, 아동 빈곤 감소 정책 등을 통해 당내 좌파의 핵심 의제를 현실 정책으로 구현했다. 시장친화적 노선으로 중도층을 흡수하면서도 진보의 정체성을 지우지 않는 균형의 정치 가 10년 장기집권의 토대였다.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반면교사다. 그 역시 헬무트 콜의 기민당 18년 집권을 끝내고 중도 노선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노선은 복지 대폭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저임금 부문 확대 등 과도한 시장지향적 정책이었다. 단기적으로 중도층 유입에 성공해 8년 집권을 이뤘지만, 핵심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지지 기반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결국 사민당은 메르켈에게 정권을 내줬고, 이후 무려 16년을 야당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과도한 중도화가 자초한 결과였다.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가치가 조화 이루는 정책 균형
블레어와 슈뢰더의 차이는 코어와 중도를 관리한 방식이다. 블레어는 중도층을 얻으면서 코어를 지켰고, 슈뢰더는 중도층을 얻으면서 코어를 잃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갈등을 관리할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지층이 당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여는 것이다. 블레어의 노동당은 당내 파벌을 사회적 자유주의자 와 사회적 민주주의자 로 구분하고 각각의 역할을 인정했다. 비례대표, 당직, 정책위원회에서 코어 지지층과 뉴 지지층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는 권력 분담의 제도화가 민주당에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공정한 경쟁의 룰을 조기에 합의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민주당의 역사적 분열은 예외 없이 혼탁한 당권·대권 경쟁에서 비롯됐다. 그 결과는 파멸적인 분당이 아니면 재집권 실패였음을 명심해야 한다. 1당원 1표제 와 합당 문제가 격렬한 논란을 일으킨 것도 차기 권력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과열되기 마련인 차기 대권 경쟁은 집권 후 일정 시점까지 논의를 유보하거나,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공정한 경쟁 규칙을 설계해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의 철저한 중립이 그 전제 조건임은 물론이다.
나아가 블레어의 뉴 레이버 ‘제3의 길’에 해당하는 브랜드화된 노선 정립이 시급하다. 코어와 뉴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이념적 접착제, 즉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개혁적 정책과 시장친화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의 가치를 조화시키는 민주당적인 제3의 길 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두 지지층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공동의 플랫폼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노선이 경제 성과를 내는 동시에, 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진보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균형이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지금은 무리한 결합 보다 연합의 정신이 필요한 때
민주당은 지금 정치지형의 재편이라는 대(大) 전환점에 서 있다. 윤석열 정권의 내란적 폭주로 촉발된 탄핵 정국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40년 숙원인 전국정당 도약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기회는 언제나 위기를 동반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의 지혜가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은 것을 찾아가는 자세다. 무리하게 화학적 결합을 추진하기보다, 다양한 지지층의 연합체로 당을 운영하고 각 집단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정치다.
장정수 편집위원, 전 한겨레 편집인
블레어의 노동당은 뉴 레이버 라는 새로운 브랜드와 제도적 통합, 그리고 정책적 균형을 통해 18년 보수당 집권을 종식하고 10년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슈뢰더의 사민당은 코어를 외면한 대가로 16년 야당의 나락에 떨어졌다.
민주당의 미래는 뉴 이재명 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배제와 적대의 정치가 아니라 포용과 연합의 정치로 승화시킬 때 민주당은 장기집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새로운 정치지형을 주도하는 진정한 전국정당으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