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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적 생각】파타고니아, ‘자멸의 덫’을 넘어 업(業)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다
[채용]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가 초판을 쓰는 데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린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폈다. 그간 분명 몇 번 훑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으니 군데군데 새로운 ‘등반로’가 보였다.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파타고니아 속으로 들어갔다.  2020년에 번역된 한글 제목도 멋지지만, 2016년에 발간된 원제 도 가히 매력적이다. ‘My People’이 서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업이라니. 그 기업과 창업자 이본 쉬나드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   유익함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아내기 위한 끈기…옳은 일이 전제가 되는 경영 “파타고니아와 2000명의 직원들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세상에 유익하면서도 수익성이 있는 기업을 만든다는 것을 전 세계 기업들에게 입증해 보일 수단과 의지를 갖고 있다.” 이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첫 느낌은 “멋진 말이네”였다. 다시 읽어보고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텐데”라고 읊조렸다. 세 번째 읽고서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유익함과 수익성을 동시에 지향한다는 것. 그 중심에 ‘옳은 일’을 내세웠다는 것. ‘지향’을 넘어 ‘입증’을 해보겠다는 것. CSR이니 CSV니 ESG니 하는 조어를 갖다 댈 필요가 없는 문장이었다.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압도적으로 성공하는 법”이라는 문구에는 말 그대로 ‘압도’됐다. 지금 우리 사회와 기업에, 그리고 기업 현장에서 실무를 보고 있는 필자에게 고민을 던져주는 말이었다.   사무실에 국한되는 배움이 아니다…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보통 (대개 재무적 측면에서) 성공한 기업인을 다룬 책을 보면, 우리는 그들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도전정신, 성실함 등을 배워야겠다는 생각 정도를 하곤 한다. 즉, 배워야 할 것이 ‘업무 능력’에 한정되는 것이다. 이는 사무실에 국한된 배움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독서의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기업인의 책을 보고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끔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인생을 곱씹어보는 계기를 주는 것은 대개 철학자나 위정자 등이 나오는 영웅적인 서사를 통해 이뤄지곤 한다. 이때 여러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곤 한다. 말 그대로 드라마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기업가와 기업을 다루는 책임에도 ‘삶의 태도’에 무게중심을 찍고 독해를 하게끔 하는 신묘한 힘을 지녔다.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찰하게끔 하는 것이다. 경영 도서라기보다는 인문학 도서, 철학 도서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이본 쉬나드를 만든 어머니의 힘, 아이 아빠로서 아이와 미래 세대를 바라본다 가족 전체가 서부로 향하는 길에 이본 쉬나드의 어머니가 국도에서 차를 멈추고 호피족 여자와 아이들에게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옥수수 전부를 건넨 에피소드가 뇌리를 스친다. 이본 쉬나드는 말한다. “그 사건이 자선 활동에 관한 나의 첫 경험”이라고. 이 대목에서 나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 모드를 전환하게 됐다.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거운 책임감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이본 쉬나드의 어머니는 아들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했겠으나, 저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자기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을 외치는 혁신가가 된 것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어머니의 영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한 인자다.   IPO와 엑싯만이 기업 경영의 최종 목표가 된 사회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또 국내에서는 ‘상장’이 웬만한 기업의 지상 과제인 상황인데 - 물론 IPO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기업의 최종 목적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 ‘공개 기업’이 되었을 때 환경보호보다 주주들의 목소리(대개 회사 매출 증대에 따른 배당 확대 요청)에 휘둘리게 되는 것을 우려해 상장을 추진하지 않는 것 또한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필자가 IPO에 대한 이본 쉬나드의 견해에 다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합자회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운영방식에 ‘족쇄’가 생긴다고까지 말한다. 성장의 덫, 자멸의 덫이라는 표현까지 덧붙인다. IPO 이후 ‘엑싯(Exit)’이 하나의 성공신화로 칭송받는 사회, 그놈의 ‘엑싯’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상찬하고 한편에서는 질투하는 사회, 과연 지속 가능한 사회일까? 우리는 족쇄를 바라는 이가 넘쳐나는 토양에서 호흡하고 있다. 자멸의 덫,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우린 덫에 빠졌다.   대의명분만으로는 지갑을 열 수 없다, 품질에 대한 파타고니아의 올곧은 고집 이쯤 되면, 이렇게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러면 환경 운동을 전업으로 하라 그러지?” 이본 쉬나드가 다른 지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품질 관리’를 그 어떤 기업인보다 강조해 마지않는다. “다 좋은 일에 쓰는 거니깐 저희 제품 사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인정에 호소하는 법이 없다. 소비자들은 선한 의도에 박수를 보내지만, 최종 선택(구매)은 또 다른 영역이다. 선한 의도에 품질이 겸비되어야 지갑을 연다. 당연한 소비 생리다. 이본 쉬나드는 더 이상 뺄 것이 없어야 완벽하다고 말한다. 특히 암벽등반 장비를 만드는 것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해 왔기에, 자신들의 제품이 등반가의 목숨과 연결된다는 점을 냉철하게 인지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를 ‘환경 보호’, 네 글자로만 요약하는 것은 반쪽짜리 접근이다. 탄탄한 가치를 지닌 브랜드로 지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에 대한 고집,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파타고니아를 착한 기업으로만 간편하게 정의하는 것은 단견의 소치다. 최근 ‘파타고니아 서울가로수길직영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커다란 ‘원웨어(Worn Wear)’ 트럭이 눈길을 끌었다. 원웨어 철학의 시각적 구현이랄까. 책에서 읽은 ‘철두철미 보증제(Ironclad Guarantee)’와도 연결해 본다. 다른 안내판에서는 “고쳐 쓰고, 오래 입자”라고 말한다. 오래된 옷을 고쳐 입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는 문구도 존재한다. ‘오래된 옷’을 더 입기 싫어서 ‘새 옷’을 사러 온 사람에게 고쳐 쓰고 오래 입자고 하다니. 역으로 품질에 대한 묘한 자신감도 읽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작게 마련된 ‘셀프 패키징’ 공간도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선물할 제품의 크기에 맞게 친환경 포장지를 감싼 후 잘라주세요”라는 안내. ‘크기에 맞게’와 ‘친환경 포장지’에 마음속 밑줄을 쳐본다. 그동안 얼마나 ‘크기에 맞지 않은’ 포장이 많았을 것이며, ‘친환경적이지 않은’ 포장지가 범람했을까.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주주’라 표현하는데, 그간 우리는 우리가 유일한 주인인 양 지구를 훼손했다. 일방적이고 무도한 태도다. 파타고니아의 환경보호 주요 활동을 연도별로 기록한 칠판과도 조우했다. 1972년 클린 클라이밍부터 책에도 기재된 여러 프로젝트가 기술되어 있다. 거친 상승곡선으로 매출을 자랑하는 여타 브랜드와는 결이 다른 ‘자랑’이다.   모두가 파타고니아가 될 순 없지만, 한 두 개는 배워 볼 수 있을 것 이본 쉬나드는 일의 의미뿐 아니라 ‘재미’까지 획득한 희소한 인물이다. “일터로 오는 길에는 신이 나서 한 번에 두 칸씩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라야 한다”는 말은 요즘 시쳇말로 꼰대의 강박일까, 아니면 일의 즐거움을 찾은 달인의 언설일까.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겅중겅중’은 단순히 낙천적인 긍정성만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업(業)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열의, 몰두가 있었을 게다. 책을 덮으며, 파타고니아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깊이 빠지게 됐다. 자멸의 덫을 넘어,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다시금 숙의해야 할 때다. 모두가 파타고니아처럼 될 수는 없어도, 파타고니아의 여러 모습 중 한 두 개 정도는 배워볼 수 있지 않을까. 직장에서 매일 같이 부딪히는 존재론적 고민, 일에 임하는 태도, 산업 생태계에 복무하며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소명의식, 업무를 넘어선 삶에 대한 자세, 이런 질문에 직면하고 있는 동료 및 선후배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주말에는 북한산에 다녀와야겠다. 쉬나드의 오기인 ‘취나드’ 길을 만나러.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전략기획부문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산업통상자원부 2030자문단,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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