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선 아이폰 조심…아차 하면 중고로 중국행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런던에서는 8분마다 스마트폰 한 대가 증발한다. 마치 지하철 배차 간격처럼 정확한 이 리듬은, 어쩌면 런던의 새로운 정시성 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영국의 기차는 늦어도, 폰 도둑은 결코 늦지 않는다.
지난 6일 B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런던 경찰이 연간 4만 대에 달하는 스마트폰을 중국으로 밀반출한 국제조직을 적발했다. 이쯤 되면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 라는 칭호를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도 부러워할 만한 속도와 규모다.
중국에서는 도난당한 스마트폰이 비싼 값으로 팔린다. (Getty Images)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
사건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났다. 한 피해자가 도난당한 아이폰을 런던 히드로 공항 근처 창고까지 추적했고, 산타클로스 대신 경찰이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894대의 스마트폰이 들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치고는 과한 규모다.
이 스마트폰 한 대가 울린 벨소리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거대한 범죄 조직의 붕괴로 이어졌다. 애플의 Find My iPhone 기능이 이렇게 극적으로 활약하리라고는 스티브 잡스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경찰은 홍콩행 화물들을 추가로 압수했고, 포장지 지문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해 도로 한복판에서 극적으로 체포했다. 차 안에서는 은박지에 싼 수십 대의 폰이 쏟아졌다. 007 시리즈의 새 에피소드 같았다.
표시되지 않은 경찰차가 중간 도로에서 차량을 가로채는 과정에서 두 남자가 체포되었다. (BBC)
마약보다 폰이 낫다?
경찰 총장 사라 존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일부 범죄자들이 마약 거래를 그만두고 폰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더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죠.
마약상에서 폰상으로. - 이게 무슨 직업전환 성공사례인가. 거리의 도둑들은 핸드셋당 최대 300파운드(57만 원)를 받고, 도난 기기들은 중국에서 4000파운드(760만원)에 팔린다. 13배가 넘는 마진율이다. 애플 주주들이 배 아파할 만하다.
중국에서 이 기기들이 비싼 이유는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열을 우회하려는 이들에게 영국산 아이폰은 자유의 창 인 셈이다. 도둑질로 시작된 폰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봤다면 자유론 에 각주를 추가했을 것이다. 주의: 자유는 때때로 범죄를 통해 유통됩니다.
아프가니스탄 국적자 2명이 체포된 후 차량에서 은박지로 포장된 스마트폰 여러 대가 발견되었다. (BBC)
은박지로 포장된 하이테크 범죄
경찰은 은박지로 싸인 기기들을 발견했다. 범죄자들이 추적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샌드위치 싸듯 폰을 은박지로 싼다니, 21세기 범죄에 구석기시대 솔루션을 적용하는 창의력이 가상하다.
GPS 신호 차단을 위해 은박지를 사용한다는 발상은 아마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다크웹 어딘가의 꿀팁 이었을 것이다. 음모론자들의 편집증이 범죄자들에게는 실용적 지식이 되는 아이러니다. 실제 효과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봤다는 점에서 A학점 감이다.
런던의 폰 절도 증가 추이. 자료 : Metropolitan Police Service. (BBC)
관광의 도시, 도둑의 낙원
런던의 폰 절도는 지난 4년간 거의 3배 증가했다. 2020년 2만 8609대에서 2024년 8만 588대로 급증했다. 영국 전체 도난 폰의 4분의 3이 런던에서 발생한다. 파리가 패션의 도시라면, 런던은 폰 절도의 도시다.
웨스트엔드와 웨스트민스터 같은 관광 명소가 폰 날치기의 온상이다.
런던 여행 체크리스트: ✓ 빅벤 보기 ✓ 대영박물관 방문 ✓ 폰 도난당하기 ✓ 경찰서에서 신고하기
연간 2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런던을 찾는다. 관광에 정신팔린 이들은 범죄자들에게 완벽한 먹잇감이다. 특히 전기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날치기가 기승을 부린다. 인도를 따라 질주하며 순식간에 폰을 낚아채고 사라진다. 이 기술을 합법적 스포츠로 전환할 수 있다면 올림픽 종목이 될 수도 있겠다.
피해자 나탈리 미첼(29)은 지난해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폰을 도난당한 후 런던 방문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고, 가방도 폰도 걱정돼요. 런던 관광이 이제는 불안장애를 유발하는 체험이 됐다.
런던 중심부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최근 진행된 캠페인으로, 스마트 절도범을 조심하자는 취지로 진행되었다. (Getty Images)
경찰의 변명: 우린 노력했어요!
런던 경찰은 최근 틱톡과 SNS에 폰 날치기범 검거 영상을 올리며 홍보에 열심이다. 올해 런던에서 개인 강도가 13%, 절도가 14% 감소했다고 자랑한다. 틱톡으로 범죄예방 홍보를 하다니, 시대를 앞서간다. 다음엔 인스타그램 릴스로 체포장면 하이라이트 영상이라도 올릴 기세다.
경찰은 이번 작전으로 18명을 체포하고 2000대 이상의 도난 기기를 발견했다며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 절도 단속 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경찰이 충분히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장 흔한 불만은 이것이다: Find My iPhone 으로 도난 폰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줘도 경찰은 인력 부족 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아이러니한 일은 경찰이 향후 예산부족으로 거의 2000명의 경찰관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범죄는 늘고 경찰은 줄고. 이 수학 공식이 풀리려면 도둑들이 양심을 되찾거나, 스마트폰이 자동으로 날아 돌아오는 기능이 생겨야 할 것 같다.
런던 경찰이 은박지에 싸인 도난당한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런던 경찰청)
통계가 말해주는 우울한 진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대인 절도 가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200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고 폰에 대한 국내외 수요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만큼 완벽한 절도 대상도 없다. 작고, 가볍고, 비싸고, 수요가 많고, (은박지만 있으면!) 추적이 어렵고, 되팔기도 쉽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온 인생을 담아놓는다. 사진, 연락처, 은행 앱까지. 한 피해자는 도난당한 폰의 은행 앱을 통해 무려 2만 1000파운드(4000만 원)를 털렸다. 폰 하나 잃고 전 재산을 날렸다. 이쯤 되면 폰 절도가 아니라 디지털 인생 강탈이다.
도난당한 스마트폰 중 상당수는 홍콩을 거쳐 광둥성 선전으로 향한다. (Alamy)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은 시민들에게 조언한다. 공공장소에서 폰을 조심하라고. 테이블 위에 놓지 말고, 뒷주머니에 넣지 말고, 걸으면서 쓰지 말라고. 사실상 폰을 쓰지 마세요 하는 꼴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스마트폰을 쓰지 말고 살라니, 이게 해결책인가.
어떤 이들은 더미 폰을 들고 다니자고 제안한다. 진짜 폰은 속옷 속에 숨기고, 겉으로는 고장 난 옛날 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범죄자를 속이기 위해 가짜 폰까지 들고 다녀야 하나.
결국 근본적 해결책은 수요 차단이다. 도난 폰 시장이 사라지면 절도도 줄어든다. 하지만 이건 제조사, 통신사, 정부, 국제기구의 협력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다. 당장 해결될 리 없다.
런던 경찰이 찾은 도난당한 스마트폰. (런던 경찰청)
당신의 폰은 지금 어디로?
정부 통계에 따르면 런던 거리를 걷다가 8분이 지나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폰이 사라진다. 그 폰은 은박지에 싸여 런던 히드로 공항을 거쳐, 홍콩을 경유해, 중국에서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다. 그곳에서 그 폰은 아이러니하게도 검열되지 않은 인터넷, 즉 자유의 도구가 된다.
이 기묘한 글로벌 공급망 앞에서 런던의 시민과 방문객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폰을 꽉 쥐고, 주변을 경계하고, 8분마다 시계를 보며 조마조마 하는 것뿐이다.
경찰의 대대적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익이 마약보다 좋고, 위험은 덜하고, 수요는 끝없이 많기 때문이다. 한 조직을 잡으면 다른 조직이 생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범죄시장에서도 작동한다.
어쩌면 우리는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 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폰이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 사람들이 다시 종이 지도를 펴들고, 공중전화를 찾아다니고, 약속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그런 시대 말이다.
아, 그리고 런던에 가거든 셀카는 빅벤이 아니라 경찰서 앞에서 찍는 게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거기서라면 적어도 도둑들도 조심할 테니까.
런던 경찰이 찾은 도난당한 은박지에 포장된 스마트폰.(런던 경찰청)
(참고 자료)
- https://www.bbc.co.uk/news/articles/c20vlpwrzwdo
- https://uk.yahoo.com/news/iphone-stolen-crime-gang-china-police-1325295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