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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럼프가 기도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음주의 지도자들 약 20여 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위에 모여 어깨에 손을 얹고 대통령과 미국, 군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백악관 보좌관
2026년 3월 5일,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 장면이 공개되었다. 약 2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그 기도의 대상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다. 백악관 신앙사무소 책임자인 폴라 화이트 케인(Paula White-Cain) 목사가 주관한 이 기도 모임에는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 랄프 리드(Ralph Reed), 개리 바우어(Gary Bauer) 등 미국 복음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기도는 톰 뮬린스( Tom Mullins) 목사가 인도했다.
그들은 대통령과 미국, 그리고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대통령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고 미국을 보호해 달라고 간구했다. 또 미국의 군인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어떤 참석자는 이란의 테러 정권을 공격하기로 한 대통령의 용감한 결정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미국을 통해 정의를 이루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겉으로 보면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종교 지도자들, 국가를 위해 간구하는 목소리, 하나님을 부르는 경건한 분위기. 그러나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과연 그런 기도를 들으실까.
전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 그것도 이미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승리를 위한 기도를 하나님이 받아들이실까. 더구나 우리는 이미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다. 미사일 공격으로 초등학교가 파괴되었고 175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퍼졌다. 아이들은 군인이 아니었다. 정치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그곳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는 언제나 약자다. 아이들, 노인들, 아무 힘도 없는 시민들이다. 그들은 전쟁을 결정하지 않았다. 외교 협상을 실패하게 만든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나 폭탄은 언제나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책을 펴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실에는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미나브의 초등학교를 폭격해 최소 175명이 사망한 장례식이 3일(현지시각) 현지에서 열려 주민들이 묘지에서 희생된 어린이들을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미사일 한 발이 그 모든 시간을 끝냈다. 폭발이 일어났고 건물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175명.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175개의 이름이다. 175개의 얼굴이다. 175개의 꿈이다. 그 아이들을 기다리던 부모들의 시간도 함께 무너졌다. 그런데 바로 그 전쟁의 승리를 위해 백악관에서 기도가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나님께 간절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주십시오.”
그 장면은 겉으로 보면 경건해 보인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이 전쟁의 승리라면 그 순간 그 장면은 경건함이 아니라 모순이 된다. 종교는 원래 인간의 폭력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권력에 취해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신앙의 역할이었다. 종교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었고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종교는 종종 권력의 곁으로 이동했다. 권력의 손에 잡힌 종교는 양심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당화의 도구가 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기도한다. 군대가 출정하기 전에 목사가 축복을 한다. 미사일이 발사되는 동안 누군가는 승리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이 장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이미 이런 장면을 수없이 보아 왔다. 1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고 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싸우는 양쪽 군대는 모두 하나님께 기도했다. 독일군도 하나님께 기도했고 연합군도 하나님께 기도했다. 모두가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불러내려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야 하는가. 양쪽 모두의 기도를 동시에 들어줄 수는 없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 자체가 이미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모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은 어느 나라의 군사 전략을 승인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는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을 창조한 존재가 그 생명을 파괴하는 승리를 축복한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렵다.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자. 예수는 칼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칼을 들려는 사람에게 칼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고 가르쳤다. 누군가의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말은 굴복의 윤리가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윤리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말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정당화한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종교의 언어가 폭격기의 날개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기묘한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에서 이루어진 그 기도 장면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상징이다. 미국 정치에서 종교는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정치 지도자가 기도하는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도덕성과 신앙심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실제로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지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속게 된다. 기도는 평화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정의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라면 그것은 신앙의 이름을 빌린 권력의 연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어린이들의 죽음이 이미 발생한 상황이라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군인이 전쟁에서 죽는 것과 어린이가 죽는 것은 윤리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다. 군인은 전쟁에 참여한 존재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국가의 전략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학교에 가고 친구와 웃고 미래를 꿈꾸는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미사일 공격으로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사실상 이 전쟁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의 승리는 결국 더 많은 폭격과 더 많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승리라는 단어 뒤에는 언제나 패배한 쪽의 폐허가 있다. 그리고 그 폐허 속에는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전쟁의 승리를 보았다. 그러나 그 승리가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 적은 거의 없다.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된다. 승리한 쪽은 자신들의 정의를 주장하고 패배한 쪽은 상처와 분노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그래서 종교가 해야 할 일은 전쟁의 승리를 축복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자체를 질문하는 것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쉽게 폭력을 선택하는가. 왜 정치 지도자들은 협상보다 미사일을 먼저 떠올리는가. 왜 약자의 생명이 이렇게 쉽게 희생되는가. 종교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서 있기보다 고통의 현장에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무너진 학교 건물 아래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부모 곁에 있을 것이다. 병원 복도에서 부상당한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 곁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서로를 이렇게까지 파괴해야 하느냐고. 왜 어린이의 미래를 미사일로 끊어야 하느냐고. 백악관에서 울려 퍼진 승리의 기도는 어쩌면 하늘에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기도는 너무 많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인간의 폭력을 미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인간이 자신의 폭력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어야 한다.
어린이 175명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기도는 단 하나다.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는 기도다. 더 이상 미사일이 학교를 향해 날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다. 권력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기도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나는 트럼프가 믿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불려 나오는 하나님, 폭격기의 그림자 아래에서 축복을 내리는 하나님, 어린이의 죽음 위에서 국가의 승리를 선언하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을 수 없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는 폭격기의 편이 아니라 아이들의 편에 서 있을 것이다. 무너진 교실의 먼지 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던 아이들의 편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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