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도 사법개혁이 놓친 문제와 해법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3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사법개혁 입법은 고강도 충격요법으로 겹겹이 낡은 특권의 성채에 큰 상처를 냈다.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법전에 올라간 대법관 증원법, 법왜곡죄 신설법, 재판소원 허용법은 대법원이 사법특권 유지 관점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입법조치 3개를 민주당이 귀신같이 골라내서 추진한 결과였다. 대법원으로서는 한사코 피해왔던 결정타 3방을 한꺼번에 얻어맞은 셈이다. 물론 개혁 3법은 모두 나름대로 당위성이 있는데다 조희대 사법부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사법개혁 3법이 과연 국민의 관점에서도 체감사법을 좀 더 공정하고 신속하게 만들 우선순위 1,2,3등이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민주당 주도 사법개혁, 주체와 방식, 결과 모두 문제투성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사법개혁 3법은 가장 뒤로 빼돌리면 몰라도 가장 먼저 앞세울 일은 전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극심한 정쟁거리가 되고 말았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법개혁의 배경과 방식, 내용을 냉정하게 복기해보면 사법개혁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중대한 일보를 내디딘 검찰개혁과 달리 아직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박한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당이 사법개혁 주체로 나섰다는 데 있다. 사법개혁이 사회적 공론화의 주제가 되기보다 정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에 대한 종합적 설계도 없이 불쑥 논란이 많은 결정타 3법안부터 내놓고 사법부와 정면 대결방식으로 사법개혁을 몰아붙였다. 그나마 민주당은 사법개혁논의가 자칫 조기 개헌논의로 비화하지 않도록 현행헌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개헌구상조차 없는 채로 사법개혁에 접근했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개혁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결점과 한계는 민주당 발 사법개혁이 조희대의 대선개입 정치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공분과 응징의지를 자양분 삼아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사법개혁의 불길을 당긴 결정적 도화선은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가 내란사법 과정 중에 쏟아낸 일련의 사법내란 판결들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응징 욕구였다. 민주당은 이것을 추진동력으로 삼아 조희대 대법원에 초강도 압박을 가하며 사법개혁 3법을 밀어붙였고 지금은 추가 3법(법관징계 강화, 퇴직대법관의 사건수임 금지기간 확대, 시민의 법관인사위 참여 확대) 통과시점을 저울질 중이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1차 사법개혁 3법에 대해서는 사법부 장악 의도 의심과 법관 독립성 침해 우려, 그리고 사법비용(4심) 증가 지적 등 만만치 않은 반론과 정쟁이 끊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2차 사법개혁 3법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있어서 대법원과 야당도 반대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추가 3법이 보태져야 나름대로 일정한 체계가 잡혀서 민주당이 꾸물거리지 말고 마무리를 짓는 게 바람직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사법개혁 3법은 갈라파고스적 구조의 특징과 병폐를 치지 못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개혁 6법을 모두 통과시켜도 그 누적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구조의 본질과 병폐의 뿌리를 놔두고 대증요법 처방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사법개혁을 해야 하는지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맞다. 조희대, 지귀연, 김인철, 우인성 모두 수인한도를 넘어선 나쁜 법관들이다. 2025년 5월 1일의 노골적인 대선개입 정치판결에 가담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9인의 대법관 모두 그대로 둘 수 없다. 지난7월 1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사건에서 전원무죄, 전부무죄를 선고한 오석준 등 4인의 대법관도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시민과 정치권의 개혁동력이 조희대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응징에 집중될 때 개혁 담론과 실천이 모두 왜소해지고 사법개혁의 본질이 시야에서 흐릿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눈을 다시 크게 떠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법개혁이 절실한 근본 원인은 단순히 특정 판결들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세계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사법체계의 후진적인 ‘갈라파고스적 특성’ 때문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특히 불만스러운 판결들은 그 갈라파고스 시스템에 고유한 병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왜 아니랴. 우리 사법부는 진화를 멈추고 철저히 고립된 성채와 같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무제한의 인사권으로 법관들을 수직적 위계 구조 속에 통제한다. 고위 법관들은 퇴임 후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범죄적 관행으로 부를 축적하는 추태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계속한다. 배심제나 참심제 등 일반시민과 전문가의 사법참여가 전무하다시피 해서 사법주권이 제왕적 대법원장과 직업법관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작금의 폐쇄적인 사법구조 속에서는 법관의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이 불가피하게 배양된다. 정치사법과 계급사법, 특권사법은 그 자연스런 결과다.
대통령 주도의 사법개혁추진위가 사회적 공론화를 주도했어야 했다
이번 개혁이 남긴 짙은 아쉬움은 바로 한국사법시스템의 갈라파고스적 낙후성을 해결할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중대의제들이 ‘법왜곡죄’ 등 ‘나쁜 법관 응징’ 프레임에 가려져 실종되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개혁의 추진전략에서 중대한 실책이 발견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하반기부터 사법부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임기를 3년도 못 채운 데다 그가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2027년 6월에 임기를 2년 반이나 남기고 정년으로 물러날 예정이라서 굴러들어온 이중으로 특별한 행운이었다. 덕분에 이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바로 헌재소장을 임명할 수 있었고 본인 임기 2년이 지날 때 대법원장도 교체하여 사법부의 체질을 전반적으로 바꿀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라도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희대를 탄핵 소추할 수 있다. 조희대는 25년 5월 1일의 대선개입 정치판결의 후과로 이재명 정권의 출범 이후 식물대법원장으로 숨죽이고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다. 조희대 사법부에 대한 고강도 응징 차원의 단편적 입법으로 민주당이 사법개혁에 앞장서며 소모적인 정쟁을 불러올 일이 아니었다. 마땅히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위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제2의 사법개혁을 주도했어야 했다. 프랑스 헌법이 규정하는 것처럼 큰 틀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질 높은 사법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내치 총리의 책임이 아니라 국민통합 대통령의 숭고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 주도로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과정을 거쳐 사법개혁의 종합 설계도를 그렸다면 개혁의 우선순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국민의 공분을 산 사법내란의 주역들은 헌법적 수단인 탄핵으로 단호히 응징하되, 제도 개혁은 시민의 삶에 직접 닿는 ‘사법 민주화’에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법관인사권부터 견제했어야 했다
우리가 놓쳤던 진짜 개혁의 우선순위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왕적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을 해체하여 별도의 독립적 헌법기관으로 이양하겠다는 헌법적 사유와 결단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개헌 전에라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서 개헌 시점의 독립적 헌법기관처럼 법관대표들과 각계대표들로 구성될 사법행정위원회나 법관인사위원회를 설치했어야한다. 그래야 당장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못한 이유는 민주당이 내란청산에 몰두하기 위해 사법개혁이 개헌논의로 비화하지 못하도록 단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점은 사법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개헌을 염두에 두거나 그와 연계해서 단계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가 피상적으로 흘렀다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응징하는 제일 직접적인 방법은 탄핵소추이지만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면서 갈라파고스 사법부의 정상화에 기여할 방안은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 행사를 견제할 독립적인 인사통제기구와 사전통제절차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대법원장 1인의 법관인사 독점권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대법관)-법원행정처로 수직 계열화된 현재의 인사시스템을 폐지하고, 개헌할 때 선보일 법관대표들과 사회대표들로 구성될 독립적 사법행정기구를 법률로 미리 신설하면 된다. 일각의 법원행정처 폐지주장이 바로 이렇게 하자는 제안이다. 개헌과 연계되지 않는 대법관 증원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개혁역행 조치인 반면 법원행정처 폐지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성격을 완화할 뿐 아니라 배후의 대통령 연계성도 약화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20일 현행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화환이 놓여 있다. 2025.10.20 연합뉴스
대법원 증원법이 가진 사법개혁 역행 요소와 정치편향 가중 효과
둘째, 개헌과 연계해서 심사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만든 또 하나의 예는 대법관 증원법이다. 증원법에 따르면 2028년부터 3년간 매년 대법관 4인이 증원된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12인의 증원 대법관 가운데 10인을 임기 후반기 중에 집중적으로 임명한다. 윤석열이 2022년과 23년에 임명한 대법관 3인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후임도 이대통령이 임명한다. 요컨대 이대통령은 대법원장 1인과 대법관 13인을 임기 중에 집중 임명하게 돼있다. 덕분에 이재명 대통령이 늦어도 27년7월까지 임명할 새 대법원장은 6년 임기 중에 대법관 23인 전원을 본인의 정치성향과 사법철학에 맞는 대법관으로 제청할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이것이 한국사법부의 갈라파고스적 특징 속에서 작동하는 대법관 증원의 정치적 인과관계다.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지금처럼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권을 갖는 구조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대법관이 대법원장과 같은 색으로 채워져서 문제다. 대법원장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 법관을 대법관으로 제청할 리 없기 때문에 당연하다. 둘째는 대법관 증원으로 말미암은 극단적인 정치편향이 향후 정권의 향배에 따라 거꾸로 교대하며 사법부의 정치성향이 그때마다 크게 요동쳐서 문제다. 확실한 과반수인 14명이 3년 동안 누적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셋째,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대법관이 대법원장을 으뜸 동료로 생각하지 못하고 대법관을 시켜준 윗분으로 여기고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기 쉽다. 최소한 임기 중 한두 번은 일종의 보은 의지가 작동해서 중대한 정치적 사안의 경우 대법원장과 주파수를 맞추며 대법원장과 그를 임명한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게 돼있다.
요컨대, 지금의 피라미드 위계구조를 그대로 둔 채 대법관 수를 짧은 기간 내에 늘리면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대법원장의 대법원 구성권한을 강화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정권의 향배에 따라 최고법원이 요동칠 편향 구성의 덫을 스스로 파게 된다.
주권자 시민의 사법참여 논의가 실종됐다
셋째, 주권자인 시민이 사법권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배심제’와 ‘참심제’의 실질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배심제는 미국에서만 시행중인 게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깝다. 적어도 OECD국가들 가운데 시민배심제와 참심제가 모두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평결에 기속력이 없어서 시민배심제라고 부르기 민망하고 전문가 참심제는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나는 시민배심제를 지금처럼 피고인의 신청에 따르기보다는 무죄주장 사건, 표현의 자유 사건, 정무직과 판검사의 독직비리사건(법왜곡죄 포함), 대기업의 ESG책임 위반사건 등 중대사건의 경우 필수적으로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이런 사건에서는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배심원단이 시민의 상식과 법감정으로 유무죄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법관들의 은밀한 법 왜곡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배심재판에 대해서도 과도한 기대나 환상은 금물이다. 형사재판에서 허용해도 필수적 배심재판 적용대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권도 주권자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부사건에서 직접 시민배심원단이 구속력 있는 유무죄 판단을 함으로써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민배심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전문가들의 참심원(명예법관, 시민법관) 참여다. 일반적으로 형사사건의 유무죄 판단에 그치는 시민배심제와 달리 참심제에서 시민전문가는 노동, 조세, 상사, 해사, 특허 등 전문분야에서 직업법관과 동등한 지위에서 사실판단과 법리해석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시민참여방안이다.
이번 사법개혁 국면에서 정치권은 배심제건 참심제건 시민의 사법참여를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법왜곡죄를 신설하면서도 시민참여의 법 왜곡 방지효과에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1심 내란재판이 필수적 배심제로 진행되었다면 지귀연, 우인성, 김인철의 국민모독적인 튀는 판결이 가능하지 않았을 텐데도 그랬다. 그만큼 시야가 좁았다. 국회의원들은 일반시민들이 정치엘리트들의 부패독직 혐의에 유유상종 엘리트법관보다도 한층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 것으로 예측하고 내심 시민배심제를 꺼릴 가능성이 높다. 실은 그래서 더 요구해야한다. 또한 시민을 배제한 모든 개혁논의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관 대폭 증원과 법원 신설 등 사법 인프라의 획기적 확충방안이 빠졌다
넷째, 사법신뢰도와 사법만족도를 높이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법 인프라의 획기적 확충 방안이다. 무엇보다도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구대비 1/3수준에 지나지 않는 법관 수를 최소한 지금의 2배 이상 증원 계획을 세워서 집행해야 맞다. 우리나라법관이 유럽 법관에 비해 3배 이상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가정하기보다 우리국민에게 제공되는 사법서비스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그 증거가 기껏해야 한 달에 한번 고작 5분~10분 열리는 하급심의 부실 심리와 재판 지연, 그로 말미암은 사법 불신이다. 이렇게 볼 때 하급심 법관의 증원만큼 절실하게 요구되는 게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하급심 법관 증원 계획 없이 덜컥 대법관 증원부터 했다. 집을 지으면서 바닥 작업을 하지 않고 지붕부터 얹은 것과 다르지 않다.
법관 증원과 함께 인구 30만이 넘는데도 지원이 없는 세종, 화성 등 7개 도시부터 시작해서 인구 10만이 넘는 지역에 지원을 신설하여 시민들의 사법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재판을 받기 위해 근처의 큰 도시로 한두 시간 차를 끌고 가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법만족도가 높은 구미의 사법선진국에서는 인구 5만만 넘어도 작은 지원을 설치해서 시민의 사법접근성을 도모한다. 이처럼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사법 인프라 확충 로드맵 없이 덮어놓고 대법관 증원부터 몰아붙인 조치는 아무리 조희대 대법원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고 객관적인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후 우선순위를 헷갈린 정치공세이자 탁상공론이라는 박한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국민이 바라마지 않는 파격적인 전관비리 근절방안이 안 보인다
다섯째, 시늉뿐인 규제를 넘어선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력한 전관비리 근절책이 안 보였다.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은 판검사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암적 관행이다. 누가 봐도 공직 경험의 사유화와 영리화가 제대로 금지되었다 싶을 정도로 중견 법관이나 고위 법관의 변호사 개업이나 관련 기업 취업을 파격적인 수준으로 제한하는 입법 결단이 필요하다. 일부 법조인의 직업의 자유보다 사법 정의와 기강 확립이라는 공익이 훨씬 중대하다. 나는 퇴직 법관의 전관비리 근절 대책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열화 같은 지지를 보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법관의 일은 권력행사의 당부당을 판단하고 경계와 한계를 설정하며 인권의 최종보루로 기능하는 몹시 명예롭고 중요한 일이다. 또한 세상과 인간을 보는 안목이 확립되고 가치관이 익을수록 좋은 판단을 기대할 수 있는 전문직업이기도 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법관이 정년까지 채우는 게 바람직한 이유다. 퇴직 후에는 법학교수나 민상사 중재기구, 공익소송 등 공익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검사 경력을 기반으로 퇴직 후 개업 변호사로 돈벌이에 나서는 것을 불명예로 인식하는 법조문화가 만들어져야한다. 현직에서는 권력과 명예를 누리다가 퇴직해서는 전관예우로 돈을 쓸어 담는 것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
사법선진화 제도 도입도 필수적이다
여섯째, 사법선진화를 위한 실용적 제도 도입이 지체 없이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영미법계의 핵심 증거조사 절차인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하여 재판 시작 전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와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중요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는 디스클로저(Disclosure, 정보공개) 제도를 병행함으로써, 소송 당사자 사이의 극심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증거가 편중된 현대 사회의 복잡한 분쟁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는 일이며, 사법 공정성과 재판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선진화된 사법 인프라의 핵심이 된다.
나아가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전면 확대하여 거대 자본이나 권력에 의한 조직적 횡포에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증거개시 및 정보공개 제도가 정착될 때, 비로소 개별 국민은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대등한 위치에서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는 실질적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법관 증원 및 법원 신설과 같은 외형적 확대와 더불어 이러한 사법 인프라의 질적 발전은 국민의 사법 서비스를 실무적으로 강화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국민의 제소 권한을 실질화하는 것은 독립적인 사법부에 의한 법적 감독과 통제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시민의 기본권 보호와 법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전문가위원회와 시민의회의 분업과 협업이 바람직한 절차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사법 민주화 조치와 사법 인프라 조치를 중심에 놓고 민주당이 아니라 대통령 소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주도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사법개혁이 진행되었더라면 쓸데없는 정쟁에 휩쓸리지 않고 국민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법왜곡죄 도입 여부와 재판소원 허용 여부는 그런 바탕위에서 개혁의 마지막 제도 틀로서 필요하고 바람직한지, 어떤 조건에서 그런지를 따져서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했다. 두 가지 모두 법관 위에 헌법과 국민이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여러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사실과 법리에 대한 법관의 충실성과 헌법감수성 강화를 겨냥하는 이러한 장치들은 사법서비스가 정상화된 토대 위에서 마지막에 논의해야만 했다.
사법개혁의 세칙으로 들어가면 법규제도와 실무관행, 경제유인과 문화요인들이 얽혀있는 탓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끝까지 팽팽하게 의견이 갈리는 간단치 않은 사안들이 적지 않다. 법왜곡죄 신설문제와 재판소원 허용문제가 전형적인 보기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내용에도 논쟁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이럴 때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최종 쟁점들을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의 추첨시민의회(Citizens Assembly)의 학습, 토론, 숙의 과정에 맡겨 깨어있는 주권자의 최종 판단을 구하는 방식이다. 전문가의 문제의식과 시민의 현실감각이 만나서 집단지성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주당 주도의 사법개혁 3법은 낡은 특권의 성채에 깊은 상처를 낸 것은 사실이나 시민을 위해 온전한 새 집을 지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조희대 대법원장이 정년을 맞이해서 물러날 2027년 6월 직후 이재명 대통령이 개혁의지가 충만한 새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을 벤치마킹해서 국민을 위한 ‘제2차 사법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목표는 국민의 인권보호와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해 사법부를 본연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 속으로 되돌려놓는 데 있다. 현행 법제도 아래서 사법부에 주어진 다양한 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한국사법부의 갈라파고스적 후진성을 극복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근본 방향과 해법은 여기서도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일반법관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과 특권을 해체하고 주권자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데 있다. 하루바삐 중대사건에서 시민의 사법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법관이 판결에 대해 헌법과 국민에게 무한 책임을 지게끔 새로운 시민사법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권보장과 법치주의로 가는 탄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