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 넷제로 분석(1편)】글로벌 IT산업, ‘카본 오프쇼어링’의 이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과 EU 중심의 글로벌 넷제로 전략이 새로운 무역질서로 부각하면서, 상대적으로 아시아 지역 기업들에게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넷제로 정책의 현실은 우리나라 기업을 옥죄고 있다. 이에 <임팩트온>은 3회에 걸쳐, 반도체 산업 넷제로 분석을 통해 현실과 이면, 대안을 모색해봤다./ 편집자주
탄소중립 선두주자 평가받은 글로벌 IT기업의 이면…
온실가스 배출 외주화와 공급망 배출관리 미흡
글로벌 무역으로 인한 온실가스배출의 경로/ Nature
“스코프3(Scope3)를 포함한 넷제로를 2040년까지 달성하겠다.”
지난 2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펴낸 ‘연간보고서(2023 Annual Report)’의 내용이다. 스코프3란 제품의 생산과 유통과정, 즉 협력업체부터 고객까지 전체의 가치사슬(Value-Chain)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말한다.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노광장비를 독점하고 있는 ASML의 한국 고객사 비율은 25%에 달할 정도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ASML 의존도는 높다. 이에 국내 몇몇 언론에서는 “ASML이 RE100을 미달성하는 고객사에게 납품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과연 이는 사실일까. 본지의 취재 결과 ASML코리아는 “2023년 연간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목표를 강화한 것은 맞으나, 원자력 에너지 사용 금지나 납품 불이익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응답했다. 본지가 삼성전자를 통해 확인해보니, “ASML이 대외 공개한 목표는 장비의 기술 혁신을 통해 소비전력 및 생산성을 향상시켜 ‘제품 사용’의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이며, 고객사에 직접적인 요구를 할 의도는 없음을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글로벌 IT기업, 스코프1&2 탄소배출 관리 탁월…
스코프3는 실망스러운 성과
이런 해프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대기업이 넷제로 목표를 강화할수록, 국내 수출 기업들의 탄소 부담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탄소 오프쇼어링(Carbon Offshoring)’이라고 불리는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글로벌 IT기업들이다.
2010년대부터 대두된 개념인 탄소 오프쇼어링은 ‘위험의 외주화’ 탄소 버전이다. 비교적 온실가스 규제가 느슨한 지역, 특히 아시아에 고탄소 배출 공정을 집중시켜 온실가스에 대한 관리 책임을 해외에 전가하는 것이다. 가치 사슬 내 산업안전보건 위험을 협력사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와 비슷한 논리다.
하버드 대학교의 ‘2015년 중국 탄소배출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소비되는 제품이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에 달했다.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은 유럽과 미국이었다. 마찬가지로, 인도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에서 해외 소비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약 20%에 달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은 각각 2014년과 2018년, 자사의 모든 운영 시설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며 넷제로의 선두주자로 주목받았다. 즉, 자사의 운영 시설에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인 스코프1(Scope1)과 사용 전력에서 발생하는 간접 온실가스인 스코프2(Scope2)에서 RE100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IT섹터의 스코프3(Scope3) 비중은 77%로 매우 높은 편이다. IT기업들이 사용하는 반도체 칩, 네트워크 장비 등은 높은 온실가스 집약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2023년 환경책임보고서에 따르면, 공급망의 제조 공정이 애플의 온실가스배출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5%에 달했다.
이는 결국 스코프3 배출 관리를 강화하려면, 공급망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일례로 지난 17일, 애플은 “협력사 중 95%가 2030년까지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데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서약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스코프 3 배출 감축 성과는 어떨까. 최근 이를 지적하는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애플은 역대 최초로 탄소중립제품을 출시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국제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례로 독일의 환경단체 신기후연구소(New Climate Institute)는 “애플의 주요 협력사가 재생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좋지 않은 성과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제품이라고 자사 제품을 브랜딩 하는 것은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유럽 소비자 기구(BEUC)는 한발 더 나아가 “애플의 탄소중립제품은 과학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소비자 오인의 소지가 있다 ”며 “EU차원에서 잘못된 친환경 광고를 금지했기 때문에, 애플에 대해서도 이러한 마케팅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SBTi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소중립 서약취소 목록에 등재했다./SBTi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스코프 3 배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 IT전문 언론 더 버지(The Verge)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협력사 27곳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제출한 기후변화 보고서를 분석했는데, 대부분의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 관리에서 미진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기업의 경우 재생에너지 구매계약을 한 건도 맺지 않거나, 시설 확장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이 급등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 2021년, 대만의 치코니 전자(Chicony Electronics)는 태국에 공장을 신설하고 중국의 공장을 확장했는데, 이로 인해 2021년도 온실가스 배출이 전년 대비 무려 700%나 상승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코프 3 배출에 대한 대응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 (SBTi)에 기한 내에 온실가스배출 감축 목표를 제출하지 못하면서, 배출감축 서약 취소(Commitment Removed)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IT기업의 탄소중립 전략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스코프 1&2에 해당하는 자사 운영시설 및 에너지(전력) 사용에 대한 배출 감축에는 뛰어난 성과를 보였지만, 공급망 특히 아시아의 반도체나 전자장비 산업에 대한 온실가스배출 관리에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글로벌 IT 기업들은 PPA(전력구매계약),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스코프3 배출량을 줄여왔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벽에 부딪힌 상태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