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공무원의 시대착오적 복종 의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윤석열이 자행한 계엄 선포 행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내란 난동이며 심각한 인권 유린의 사례다. 그것은 명령 이행을 기본으로 하는 군인과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른바 ‘복종의 의무’ 조항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받은 지 일주일을 맞은 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대테러과 소속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순찰하고 있다. 2025.1.13. 연합뉴스
이 복종 의무는 일제 잔재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의 유산이다. 일본 군국주의는 천황을 정점으로 그 뜻을 전하는 관리와 복종의 대상인 신민(臣民)으로 구성된 가부장적 국가체제로서 상관의 명령의 불복종은 바로 일왕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무조건적 절대 복종만이 요구될 뿐이었다. 이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절대적 복종 개념이 일제 강점기에 이 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 사회를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은 본래 제정 당시(1949년 8월 12일) 제29조에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단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뒷 부분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규정이 바로 ‘의견 진술권’ 또는 ‘항변권’이다. 하지만 박정희 쿠데타 이후인 1963년 4월 17일 기존 국가공무원법을 폐지하고 새로 국가공무원법을 제정하면서 ‘의견 진술권’을 삭제하였다. 이렇듯 현재의 공무원 복종 의무 조항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이자 박정희 군사독재의 산물이다.
‘복종(Obedience)’이라는 개념에는 ‘무조건적’ 혹은 ‘절대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희망에 합당하는지와 관계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자율을 기반으로 한다. 자율성은 현대 시민사회의 핵심적 가치이며, 근대법 질서의 근본 바탕이기도 하다. 영어로 ‘복종하다’는 obey를 의미하는데, 이 말은 ‘따르다’ follow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상관의 직무명령을 따르는 것을 ‘obey’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시각이다. 자율적으로 공감하여 ‘follow’하는 관점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공무원법은 ‘복종 의무(Gehorsam)’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직무명령 준수 의무(Folgepflicht)’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실정법 그 어디에도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우리 주변에서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 혹은 “불법한 명령은 그에 따르지 않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법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대법원은 1988년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고, 하관은 소속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그 명령이 참고인으로 소환된 사람에게 가혹행위를 가하라는 등과 같이 명백한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도2358 판결).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군사법이든 공무원법이든 우리나라 실정법 그 어디에도 “불법한 상관의 명령에 불복할 경우 처벌되지 않는다” 혹은 “위법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라는 명문 규정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독일 연방공무원법은 직무명령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도 그것이 고수되는 경우에는 차상위 상관에게 이의 제기를 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하급 공무원의 의견 제시와 이의 제출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급자의 직무명령이 유지된다면 직무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그 명령의 집행에 따른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은 오로지 상관이 부담하게 된다.
‘제복 입은 시민’ 독일연방군, 군대에 대한 시민의 통제
군인의 경우, 명령 이행과 복종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내란수괴 윤석열의 계엄 선포에 동원된 일반 병사들의 명령 불복종 문제를 포함하여 채상병 사건으로 항명죄로 재판을 받은 박정훈 대령의 경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나치 군대의 폐해를 경험했던 독일의 군대를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독일연방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학살 등 전쟁범죄와 온갖 만행을 저지른 나치 군대인 독일국방군과 철저히 단절하고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창설되었다. 독일 연방군의 표어는 “우리는 독일에 봉사한다(Wir Dienen Deutschland)”이다. 여기에서 ‘우리’란 시민으로서 자유롭고 책임감과 분별력을 가진 “제복을 입은 시민”을 의미하고 있다. 다음으로 ‘독일(Deutschland)’이란 연방군이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의미하는데, 이는 단순히 국가와 영토 및 국민만이 아니라 독일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즉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괄한다. 그리고 ‘봉사(Dienen)’란 무제한적인 복종이 아닌, 하나의 시민으로서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봉사를 의미하고 있다. 이는 군대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함축한다고 해석된다.
독일연방군이 제시하는 핵심 가치는 바로 ‘내적 지휘’(Innere Fuhrung)다. ‘내적 지휘’란 ‘제복 입은 시민’을 지향한다. ‘제복 입은 시민’에 대하여 독일연방군 복무규정은 “자유로운 인격체, 책임 의식을 지닌 시민, 전투 준비 태세가 완비된 군인”이라고 설명한다.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개념은 1955년 독일연방군 설치와 더불어 형성되었다. 독일에서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 간주되며, 불법적 명령에 대해서 양심에 따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한다.
독일 군인법에서 위법한 명령은 '제복입은 시민'에게 항상 구속력을 가지지 않으며 정당성이 배제된다. 다만 수명자는 범죄 내지 질서위반죄를 저지른다는 것과 명령과 지시가 위법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했거나 정황에 따라 명백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독일 군인법 제11조 제2항). 또한 독일 관련 법률은 군인에게 인간 존엄을 해치는 명령이나 직무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령에는 불복종을 허용한다. 자신의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반할 경우 군 복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즉 양심적 반전권(反戰權)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법원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무력 사용에 동원되기를 거부하는 병사에게 탈영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히틀러의 명령에 맹종했던 나치 군대가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이번 윤석열 계엄 선포라는 난동을 계기로 이 땅의 군대는 민주주의 군대, 시민의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마땅히 “부하에게 불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관련 제반 법률의 명문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윤석열 내란 청산은 우리 내의 봉건성과 권위주의 청산의 과정이어야
이제 ‘복종’이라는 전 근대적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폐기되어야 한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가 우리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폐해라는 사실이 윤석열 일당이 자행한 내란의 전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비단 공무원 사회와 군대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보았다. 이번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청산은 비단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봉건성과 전 근대성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한 총체적 청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